천재감독 빌리 와일더의 1953년 작 <제17포로수용소>는 해학과 위트가 넘쳐나는 고품격 영화다. 암울한 포로수용소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얘기를 유머러스하면서 때론 신랄하게 묘사했다. 희망 없는 포로들이지만 탄식 보단 웃음으로 역경을 이겨낸다. 감독은 미국인들의 낙관주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 세프톤을 통해 세상을 비웃고, 통쾌하게 복수한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개인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4년, 다뉴브강 근처의 제17포로수용소엔 600여 명의 미군이 잡혀 들어와 있다. 이 가운데 세프톤 중사(윌리엄 홀덴)는 영악하고 개인주의적인 인물. 밀주를 만들어 파는가 하면 독일군과 모종의 거래를 한다.
주인공 세프톤(왼쪽)은 이기적이지만 뛰어난 판단력으로 동료들을 구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주일 앞두고 2명이 탈출을 시도하자 세프톤은 ‘실패할 것이다’에 담배를 건다. 세프톤의 예상대로 탈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동료들은 세프톤을 적대시한다. 여기에 수용소에 함께 있는 던바 대위(돈 테일러)가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을 폭발한 사실이 독일군 귀에 들어가자 세프톤은 스파이로 의심 받는다.
동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세프톤은 스스로 스파이를 찾아내고 던바 대위를 구출해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초반은 세프톤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다 후반에 넘어가면 세프톤이 영웅으로 탈바꿈한다. 세상과 등진 고독한 존재, 세상의 편견에 고립된 인물이 보란 듯이 세상을 구한 것이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무지한 다수 보다 현명한 한 명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윌리엄 홀덴은 이 영화로 미국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