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전설, 故 남궁원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오늘(5일)은 故 남궁원의 1주기다. 고인은 지난 2024년 2월 5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남궁원은 1959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데뷔한 이후 무려 345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서구적인 외모와 중후한 분위기로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신성일과 함께 원조 ‘조각 미남’ 배우로 사랑받았다.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자매의 화원’(1959), ‘빨간 마후라’(1964), ‘내시’(1968), ‘화녀’(1971), ‘아이러브 마마’(1975) 등이 있으며,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끌며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배우로서의 헌신을 인정받아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홍정욱의 뭉클한 추모사, “아버지는 한 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였다”
고인의 아들이자 전 국회의원인 홍정욱은 추모사에서 아버지의 철학과 인생관을 회고했다.
홍정욱은 “부모는 자식을 쏘아 올리는 활이라고 했다”며 “아버지는 저희를 아주 높고 넓은 세상으로 힘껏 쏘아 올려 주셨다. 그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온 평생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자리와 출마 제안을 받으셨지만, 아버지는 ‘내가 국회의원을 10번을 해도 사람들은 나를 영원히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한 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며 연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회상했다.
고인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도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홍정욱은 “아버지는 ‘나는 가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로써 행복했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라고 당부하셨다”며 고인의 철학을 전했다.
연기를 넘어 인생을 빛낸 배우, 그리고 한 사람의 가장으로
故 남궁원은 단순한 영화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배우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며 정치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영원한 배우’였다. 또한 자녀들에게는 ‘세상을 위한 큰일’을 강조한 교육자로서, 가족을 위해 밤무대에서 노래까지 불렀던 헌신적인 가장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재력가, 건물주가 아닌, 오로지 배우로서 동료들에게 존경받고,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원했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한국 영화계와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게 되었다.
60여 년간 오직 연기의 길만을 걸어온 故 남궁원의 발자취는 한국 영화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