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비밀’ 아쉬가르 파라디, 인간성을 고찰하다 [김노을의 디렉토리]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인물의 사연을 하나둘씩 쌓다보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가 된다. 그렇게 쌓인 사연들은 사회 문제를 가리키고 이는 곧 현실적인 담론으로, 인간성의 고찰로 이어진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1972년 이란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영화 ‘사막의 춤’으로 입봉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이란의 현실을 투영한 작품들을 연출해 전 세계적 인정을 받는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사진=ⓒAFPBBNews=News1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이란 사회의 내밀한 구석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2003년 감독 데뷔 이후 아쉬가르 파라디는 ‘아름다운 도시’(2004), ‘불꽃놀이’(2006), ‘어바웃 엘리’(2009) 등을 통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영역을 그렸다.

그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영화가 바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다. 이 영화로 아쉬가르 파라디는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아케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이야기는 별거 중인 씨민과 나데르에서 시작해 치매인 아버지를 거쳐 가정부 라지에까지 가 닿는다. 씨민은 딸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꿈꾸고, 그런 아내와 갈등을 겪은 나데르는 치매 아버지를 돌봐줄 가정부 라지에를 고용한다. 어느 날, 임신한 라지에는 개인적인 일로 나데르의 아버지를 침대에 묶어둔 채 외출을 하고, 이 때문에 아버지가 위독해졌다는 사실을 안 나데르는 분노와 함께 라지에를 해고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라지에는 유산하게 되고 그는 씨민, 나데르 부부를 살인죄로 고소한다. 그렇게 법정에서 마주한 두 가족은 각자의 입장을 위한 변명과 거짓을 늘어놓으며 첨예한 법정 공방을 이어간다.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기본 서사만으로도 흡인력 있는 매력을 가졌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스토리라인과 문제의식을 이질감 없이 섞는 데 성공했다. 이란 사회에 팽배한 계급, 성차별, 종교 등 문제를 신선한 방식으로 엮어내는 솜씨도 탁월하다. 무엇보다도 관객의 입장에서 특정 인물을 처단하게 만들지 않음으로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한층 더 성숙한 영화로 남았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포스터 사진=㈜CAC 엔터테인먼트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포스터 사진=㈜CAC 엔터테인먼트
◇ 생각보다 복잡한 진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누구나 진실을 알기 원하지만, 언제나 진실은 지독히도 복잡하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흐릿해지는 진실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 담았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는 별거 중인 부부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별거하던 부부가 4년 만에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혼하기 위해 만난 부부 마리와 아메드는 어쩌다 한 집에 머물게 된다. 이 두 인물만 있으면 괜찮은데, 여기에 마리의 약혼자 사미르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리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이 함께 하며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스틸컷 사진=㈜CAC 엔터테인먼트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스틸컷 사진=㈜CAC 엔터테인먼트
사미르의 아내는 혼수상태인데, 마리의 큰딸 루시는 엄마 때문에 사미르의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관객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실의 타래는 그리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과거 루시가 사미르의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영화는 종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나하나 해결하기도 벅찰 스토리를 아쉬가르 파라디는 차분히 풀어낸다. 드라마 장르치고 긴 러닝타임 130분 동안 충분한 장르적 긴장감을 부여함은 물론 지루할 틈 없이 진실에 다가간다. 그렇게 도달한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엔딩은 진실 앞에 놓인 한 인간의 인간성을 반추하며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사진=오드 AUD, ㈜티캐스트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사진=오드 AUD, ㈜티캐스트
◇ 서서히 드러나는 ‘누구나 아는 비밀’ 아쉬가르 파라디가 이번에는 스페인으로 무대를 옮긴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을 내놨다.

지난 1일 국내 개봉한 ‘누구나 아는 비밀’은 동생의 결혼식 파티 중 라우라의 딸이 갑자기 사라지고, 모두가 오랫동안 감춰온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며 서로를 의심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결혼식 파티라는 영화적 설정은, 다수 등장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서사의 층위를 만들어내는 아쉬가르 파라디의 장기가 발휘되기에 충분한 지점이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과연 라우라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누구인지, 어쩌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이는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들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누구나 한 번쯤 놓일 법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도덕성을 고찰하게 만든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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