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할리우드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통쾌함이 작렬한다. 비유적 상징으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주제의식을 욱여넣지 않으면서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실력이 과연 명불허전이다.
전 세계 영화팬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영원한 악동 타란티노. 허를 찌르는 통쾌함으로 가득한 그의 카운터펀치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화끈하다 ‘펄프 픽션’(1994)
타란티노는 1992년 영화 ‘저수지의 개들’로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찬사 속 데뷔했다. 할리우드 이단아의 출현은 모두를 흥분케 했고, 그로부터 2년 후 내놓은 ‘펄프 픽션’은 제47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제67회 아카데미시상식 7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각본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영화는 어느 식당에 남녀 건달이 손님을 상대로 강도 행각을 벌이며 시작된다. 그런 한편 빈센트(존 트라볼타 분)는 동료 건달 쥴스(사무엘 L. 잭슨 분)와 함께 두목 마르세러스(빙 라메스 분)의 금가방을 찾기 위하여 다른 건달이 사는 집으로 향하고, 이 과정 속 대화에서 이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타란티노는 다른 에피소드로 화제를 전환한다.
에피소드만 전환되면 다행이다. 타란티노는 사건부터 시간까지 모든 걸 섞어 영화를 진행한다. 인물은 “음, 이 햄버거 맛있는데”라며 일상적인 표정을 짓다가 돌연 얼굴을 바꾸어 총질을 한다. 햄버거를 먹다가 갑자기 총을 쏘는 상황만 봐서는 헛웃음이 날 법도 한데 이런 장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화끈하게 깔린다.
영화 ‘펄프 픽션’ 포스터 사진=영화 ‘펄프 픽션’
상극인 상황에 놓인 두 인물의 말도 안 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에피소드의 맛도 일품이다. 그 유명한 미아(우마 서먼 분)와 빈센트의 댄스 시퀀스는 20년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각종 영화, TV프로그램에서 오마주 및 패러디되고 있다. 빈센트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아에게 모든 행동을 조심하지만 미아는 빈센트와 춤을 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아가 약물로 인한 위기에 빠지고 빈센트가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그의 가슴팍에 거침없이 내리꽂아 살려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때문에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느껴지는 순간마저도 ‘펄프 픽션’에는 타란티노의 화끈한 스타일이 뇌리에 박힌다. 욕설이 난무하고 피가 낭자하면서도 이렇게 유쾌한 영화는 오직 타란티노라서 가능했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포스터 사진=유니버설 코리아
◇ 통쾌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진지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 같던 타란티노가 웬일로 역사를 끌어들였다. 그는 인류의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녹였다.
‘바스터즈’는 정말 거친 인간들이 허리춤에 칼과 총을 차고 누비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유대인 미군 알도 레인 소위(브래드 피트 분)는 복수의 칼을 품은 유대인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로 향한다.
그곳에는 유대인의 씨를 말리려는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 분)이 있고, 그에게 가족을 잃은 쇼산나(멜라니 로랑 분)이 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한스를 노리는 쇼산나는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시사회를 여는 나치들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여기에 군인부터 배우까지 여러 인물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이 영화의 소재로 들어왔다곤 하지만 타란티노는 누구나 알 듯 음울한 기운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의 전작들처럼 인물들은 여전히 독자 행동을 하고, 에피소드는 인물 챕터로 만들었다. 사건과 인물이 만은 만큼 탈도 많다. 그래서 통쾌하다.
‘바스터즈’는 타란티노 식으로 만든 전쟁영화다. 예나 지금이나 관습처럼 전해져 오는 전쟁영화의 틀은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다. 어떠한 도덕적, 윤리적 가치도 묻지 않고 통쾌하게 제 갈 길 가는 타란티노야말로 진정한 거친 녀석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 사진=소니 픽쳐스
◇ 25년 만 칸 영화제 초청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타란티노가 ‘펄프 픽션’ 이후 25년 만에 칸 영화제를 찾았다.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함께.
오는 25일 개봉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배우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기발하게 뒤집은 영화로, 타란티노의 4년 만의 신작이다.
타란티노는 “내가 찍은 작품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영화”라는 말로 이 영화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타란티노의 방식으로 재탄생한 그 시절 할리우드는 어떤 모습일지, 희대의 살인 사건은 어떻게 담겼을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