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앞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프랜차이즈 영화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시네마’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새삼스러워 보이는 그의 질문은 곧 ‘아이리시맨’이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5일(현지시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개최됐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가 주관하며 아카데미(오스카)와 더불어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꼽힌다.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 역사 최초로 외국어영화상 수상이라는 낭보를 전했으나 이와 별개로 몇몇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이리시맨(The Irishman)’으로 올해 골든글로브를 찾았다. ‘아이리시맨’은 잠깐의 극장 개봉과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당시,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마스터피스’ 칭호를 받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숱한 명작으로 미국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마틴 스콜세지의 정점이라 불린 ‘아이리시맨’. 하지만 골든글로브는 이 마스터피스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사진=ⓒAFPBBNews=News1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은 감독상, 각본상 등 총 5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경쟁자는 봉준호 감독(기생충),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샘 멘데스 감독(1917), 토드 필립스 감독(조커) 등이었으며 감독상은 셈 멘데스, 각본상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돌아갔다. 물론 수상한 모든 작품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고, 수상의 이유도 있을 터다. 정작 마틴 스콜세지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고 각종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쓸었던 거장의 수상 불발이 그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느냐 만은 평생 영화만 만들어온 한 감독에게 있어 정점을 찍었다는 평의 영화가 무관에 그쳤다는 건 아쉬움을 넘어 의아하기까지 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골든글로브에 앞서 지난해 11월 초 뉴욕타임스에 ‘마블은 시네마(Cinema)가 아니다. 내가 이유를 알려줄게’라는 제목의 오피니언을 기고했다. 해당 발언은 급속도로 퍼져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글에서 “나는 한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는 테마파크에 가깝다’고 말했다. 마블 영화들은 시네마가 아니다. 새로운 것, 미스터리, 정서적인 위험이 부재한다.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 한정된 주제는 조금씩 변주될 뿐이다”고 21세기 프랜차이즈의 대표격인 마블을 비판했다.
마블이 끊임없이 내놓는 후속작들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명목상 속편이지만 본질은 리메이크다. 시장 조사를 하고 관객 테스트를 하며 검증 받고, 수정하고, 재검증 받고, 재수정 한다. 소비가 될 때까지 계속”이라며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는 상업영화의 현주소를 지적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상황도 슬프고 개탄스럽다”고 토로했다.
영화 ‘아이리시맨’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비판한 마틴 스콜세지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비난이 폭주했다. 우리나라 시쳇말로 치면 ‘꼰대’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웠고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는 “마블도 시네마”라고 반격했다. 해외 트위터 이용자들은 개봉을 앞둔 ‘아이리시맨’에 대해 마틴 스콜세지가 “휴대전화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을 조롱하려는 듯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심드렁한 표정의 사진을 너나 할 것 없이 올려댔다. 마치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았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이러한 반발에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마블을 콕 집어 비판한 이유는 디즈니 위주로 돌아가는 현 미국 영화계를 향한 우회적 비판이고, ‘시네마’를 언급한 건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무비(Movie)’ 속 인간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갈망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마틴 스콜세지는 ‘시네마란 무엇인가’라는 자문에 ‘아이리시맨’으로 자답했다. 이 영화는 그가 단순히 자신의 영화 세계관을 되짚거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다. ‘아이리시맨’에는 전작들을 통해 아메리카 시네마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아온 마틴 스콜세지의 주요 테마인 갱, 폭력, 이민자, 종교적 물음이 고스란히 담기는 동시에 변화했다. 폭력에 몸담은 남자들을 따라 두 개의 시간 플롯으로 진행되는 서사에는 피의 역사가 새겨진다. 그동안 폭력 묘사를 통해 어떠한 영화적 즐거움을 줬던 전작들과는 다르다. 마틴 스콜세지의 카메라는 무자비하게 얻어맞는 혹은 누군가를 죽도록 때리는 폭력의 얼굴을 더 이상 클로즈업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린 딸을 밀쳤다는 이유로 슈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손을 부러뜨리는 남자의 옆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 응시할 뿐이다. 자주 등장하는 넓은 사이즈의 샷은 정적인 흐름을 만들고 공허만 남은 격렬한 시대의 인간 군상을 비춘다.
영화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감독, 배우 로버트 드 니로 사진=ⓒAFPBBNews=News1
혹자들은 ‘시네마’ 타령하던 감독이 왜 거대 자본인 넷플릭스와 손잡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아이리시맨’ 같은 사이즈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본은 필수적이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 등 출연진의 이름과 209분이라는 러닝타임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지금은 살아생전 제 아무리 잘 나갔던 감독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어 극장에 거는 건 엄두도 못 내는 시대다. 사람들은 10분 안에 결말을 봐야 하고 PC, 그것도 모자라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이러한 현실에서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감독 스스로가 말했듯 극장에서 보면 가장 좋겠지만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에게 필수적인 선택이자 시네마의 건재를 증명한 하나의 방법이 됐다.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다 칭송 받는 거장의 최신작이 마스터피스 반열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새로운 작품을 내보일 때마다 이전 작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영화 외길을 걸어온 마틴 스콜세지는 지금까지 자신이 닦아온 길을 이탈하지 않고 곧장 달려 정점을 찍었다. ‘아이리시맨’ 같이 강단 있는 마스터피스를 만든 감독이 이번 골든글로브 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건 아쉬우면서도 쓸쓸한 일이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