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8년 작 <현기증>에 대한 평가는 갈리는 편이다. 인간의 감춰진 심리묘사를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해낸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호평이 있는 반면 히치콕 특유의 서스펜스가 실종된 지루한 영화라는 혹평도 있다. 아무튼 2012년 영국영화연구소(BFI)가 평론가 감독 작가 등 846명에게 의뢰해 최고의 영화를 선정한 결과 <시민 케인>을 34표 차로 누르고 1위에 오른 작품이다. 영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명품임에 틀림없다.
<현기증>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불안에 흔들리는 감성 표현과 킴 노박의 관능적인 모습을 대비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현기증>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전직 경찰관에 관한 얘기다. 고소공포증은 강박관념과 집착을 동반한다. 스카티(제임스 스튜어트)라는 이 남자는 우연히 사랑하게 된 여인 매들린(킴 노박)을 고소공포증 때문에 잃는다. 죄의식과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하는 스카티.
영화는 반전을 거듭한다. 매들린의 죽음은 스카티의 고소공포증을 이용한 위장이었고, 주디라는 여인으로 다시 나타난다. 결국 스카티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지만, 이번엔 진짜로 주디가 죽는다.
히치콕은 억지 상황을 만들지 않고 서서히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에서 인간 심리를 대사 없이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히치콕은 완벽주인자인 동시에 천재임에 틀림없다. 영화 전체가 스카티 한 명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행동에 관객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게 된다.
매들린과 주디의 1인2역 같은 1인1역을 맡은 킴 노박의 농염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세련된 몸짓 어딘가에 비치는 불안한 눈빛 그리고 뇌쇄적인 표정. 킴 노박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