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맨십은 구단, 지도자,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걸까. 스스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높인 K리그 심판. 전북현대 마우리시오 타리코(등록명 타노스) 코치는 팀의 감격스러운 우승에도 인종차별 행위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팀을 떠나게 됐다. 이번 사안을 두고 축구계 관계자들은 타노스 코치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인종차별을 낙인시키는 과정을 두고는 입 모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타노스 코치의 논란은 11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대전하나시티즌의 K리그1 36라운드에서 일어났다. 당시 타노스 코치는 상대의 핸드볼 반칙을 두고 주심에 강하게 항의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양손 검지손가락을 두 눈에 갖다 대는 제스처를 취했다.
한국프로축구심판협의회는 11월 12일 이를 두고 타노스 코치의 인종차별이라 확언하며, 국제축구연맹(FIFA)과 대한축구협회(KFA) 제소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프로축구연맹을 향해 타노스 코치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징계를 요구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심판평가관 보고서, 경기감독관 보고서, 경기 주심의 확인서, 전북 구단의 경위서를 전달받았다. 이를 토대로 11월 19일 타노스 코치를 상벌위원회에 회부했다.
결과는 ‘인종차별 확정’. 전북은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에 대해 ‘판정을 제대로 봐라’는 의미라고 주장했지만, 프로축구연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은 타노스 코치에 5경기 출장 정지 징계와 2,0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그러면서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정 인종의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슬랜트 아이)로 통용된다. 타노스 코치는 해당 행동 전후로 욕설과 함께 ‘Racista(인종차별주의자)’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고성을 지르는 장면까지 고려했다”라며 “특정 행위에 대한 평가는 그 행위자가 주장하는 본인의 의도보다 외부에 표출된 행위가 보편적으로 갖는 의미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상대방이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기준이 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타노스 코치의 행동을 인종차별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 축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고, 팬들 또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해당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를 두고 심판협의회는 증거 영상이라며 비디오판독(VAR) 마냥 느린 재생까지 포함해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또, 프로축구연맹에 제출된 심판평가관 보고서, 경기감독관 보고서 등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가 인종차별의 의미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순식간에 지나간 장면을 두고 벤치 근처에서 바라본 경기감독관이 명확하게 인종차별이라 판단한 것이다.
징계를 위한 과정을 깔아 놓은 결과, 타노스 코치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전북과 결별을 선택했다. 11월 25일 타노스 코치는 “수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과 일하면서 어떠한 문제도 없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다. 축복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지속적인 해명에도 모든 상황의 맥락, 문화적 표현과 의미를 무시당한 채 단 한 번의 오해로 ‘자칭’ 권위자들로부터 인종차별자라는 오명을 입게 됐다”라며 “국적과 인종을 떠나 축구인으로서 안전하고 존중과 평화, 법 앞의 평등이 있는 곳에서 축구를 계속해야 하기에 슬픈 마음을 안고 전북을 떠난다”라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모호한 상황을 두고 정답을 정해 놓은 듯한 타노스 코치의 징계건. 프로축구연맹 상벌위는 피해자라고 자청한 심판협의회측의 주장에 더 무게를 실어주며 그들의 자체적인 권위와 존엄성을 드높였다.
축구계 관계자들의 생각을 어떨까. 다수가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보다는 징계 과정에 대한 비판이 컸다. 또, 심판협의회가 정치적인 요소로 인종차별 몰이를 했다는 강한 지적 또한 있었다.
A관계자는 “심판협의회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놀랍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심판협의회 성명서는 이미 ‘피해자’라고 규정했고,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에 대해 ‘가해자’라고 주장했다.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B관계자는 “경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심판협의회는 타노스 코치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징계를 내리라고 말했다.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결과를 정해놓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라며 “심판협의회 성명서는 급발진 같아 보인다. 결국 이번 시즌 이어졌던 연속된 오심을 다른 이슈로 덮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C관계자는 “프로축구연맹 상벌위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판정 항의와 관련된 징계라면 이해했을 것 같다. 명확하지 않은 제스처를 두고는 더 많은 의견을 들어볼 필요도 있지 않았을까”라며 “이번 타노스 코치의 징계로 심판들이 스스로 존엄성을 챙긴 모습이 됐다”라고 안타까워했다.
D관계자는 “판정 및 오심과 관련해서 직접 연락하면 답을 주겠다는 심판들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타노스 코치 사안은 분리돼서 바라봐야 하지만, 결국 모든 관계자 눈에는 오심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강해진 불신에 대해 말했다.
E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일부 심판 중 권위적인 모습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경기장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상호 존중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며 “타노스 코치 사안 또한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돼야 한다. 한쪽만 일방적인 존중을 취득한 느낌이 든다”라고 아쉬워했다.
이렇듯 이미 심판진을 향한 신뢰는 바닥났다. 계속된 오심 논란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K리그1, 2를 막론하고 치열한 순위 경쟁 속 석연치 않았던 판정이 각 팀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전북 또한 11월 3일 제주SK 원정에서 오심 논란이 있었고, 거스 포옛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판정 관련 항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북 구단은 타노스 코치 징계와 관련해 재심에 나설 예정이다. 25일 공식 채널을 통해 “프로축구연맹 상벌위 결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구단은 타노스 코치와 논의한 결과 이번 사안에 대한 상벌위 결정이 사실관계와 의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면밀한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심 청구를 결정했다.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판단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타노스 코치도 불명예스러운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프로축구연맹이 제시한 재심 제출 마감일은 11월 28일이다. 전북은 이에 맞춰 준비할 예정이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