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대구iM뱅크PARK에서 열린 2025시즌 K리그1 36라운드(파이널 B) 대구 FC와 광주 FC의 경기였다. 이날 경기 전 양 팀 출전 명단에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선수가 아니었다. 이날 경기 주심이었다.
이동준 주심이었다.
이동준 주심은 10월 3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SK와 전북 현대의 맞대결에서 큰 오심을 범했다. 전북 공격수 전진우가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제주 수비수 장민규의 발에 밟혔다. 전진우는 쓰러져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동준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았다. 비디오판독(VAR)도 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KFA) 심판위원회는 이를 오심으로 결론지었다.
이 판정은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다.
이동준 주심이 오심을 범한 지 36일 만에 주심으로 돌아왔다. K리그1 36라운드 결과에 따라서 대구가 강등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MK스포츠’는 축구계 현장에 몸담고 있는 다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다수가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다만, K리그에선 심판과 관련한 그 어떠한 언급도 해선 안 되기에 말을 아낄 뿐이었다.
축구인 A 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며 “올 시즌 가장 큰 오심을 범한 주심이 강등이 결정될 수도 있는 경기에 투입되는 것이 정상적인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준 주심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우린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잠시 쉬다가 이슈가 산적한 라운드에 조용히 돌아온 걸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힘이 없는 게 원망스럽다”고 했다.
단, 다수의 의견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소수의견도 있다. 심판계를 잘 아는 축구인 B 씨는 “너무들 한다”면서 “심판은 실수하면 자체적으로 큰 처벌을 받는다. 현직 심판에게 경기 배정 제외는 공포스러운 처벌이다. 그렇게 처벌받고 돌아오면 수많은 이의 말과 글에 상처받는다. 말과 글로 죽일 듯이 때리면, 심판 판정이 더 나아지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MK스포츠’가 익명을 요구한 축구인 B 씨와 나눈 이야기다.
Q. 이동준 주심이 K리그1 주심으로 36일 만에 돌아왔다.
축구계의 대체적인 반응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심판은 징계받으면, 징계 기간 교육을 받는다. 연습경기에도 나선다.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잘 준비한다. 교육받거나 연습경기에 나선다고 해서 수당이 있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K리그 심판은 경기당 수당 외 수입이 없다. 과거엔 기본급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한 달 이상 심판 활동으로 인한 수입 없이 교육받고 연습경기에만 나섰다. 솔직히 큰 문제가 있나 싶다.
Q. K리그1은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다. 국정감사에도 나왔던 오심을 저지른 주심이 한 달 만에 K리그1으로 돌아오는 게 맞는 건가 싶은데.
국가대표 선수가 실수 한 번으로 잘리는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10월 3일 경기를 돌아보면, 전북의 우승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이기도 했다. 이동준 주심은 오심으로 인정받아서 징계까지 받았다. 심판들이 징계로 배정에서 제외될 때마다 어떤 얘길 하는지 아는가.
Q. 어떤 얘길 하나.
심판끼리 있으면 “경기 배정 제외는 노동법에 위배된다”는 얘길 한다. 최저 생계비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기본급도 없이 수당만 지급하면서, 실수 한 번 했다고 돈벌이 수단까지 막아버리는 건가. K리그 심판은 일용직이다.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면 또 하나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심판은 체력과 축구에 대한 지식을 골고루 요구하는 직업이다. 심판 준비에만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수입이 꾸준한 다른 직업까지 갖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Q. 다른 직업이 없는 심판들은 징계받으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
막노동한다. 요즘엔 단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더라. 심판들은 기본적인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한다. 심판도 사람이다. 잘못 판정할 수 있다. 잘못하면, 생계가 위협받는 처벌을 받는다. 이보다 더 큰 처벌이 있나. 이 기간 다시 심판을 맡기 위해 훈련도 한다. 이동준 주심은 한국에서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까지 갖춘 주심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주심이 한 달 이상 경기에 배정받지 못한 뒤 돌아온 건데 지적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심판들은 의지할 데가 없다.
Q.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실수를 엄청나게 두려워하고 있다. 실수 한 번 하면, 다들 죽일 듯이 달려들지 않나. 말과 글로 죽일 듯이 때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심판들이 크게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Q. 이건 또 무슨 뜻인가.
현역 심판들이 ‘심판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대안은 있나. 젊은 애들은 심판이란 직업을 더 안 하려고 한다. 심판이란 직업이 점점 더 외롭고 힘들어진다. 여성 심판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한때 WK리그에선 여성 심판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남성 심판이 없으면 안 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지금 축구계는 심판을 악으로 규정하고 적대시만 하고 있다.
Q. 그래서 심판도 소통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한국도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따른다. 심판들이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이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FIFA 규정이 그렇다. 이 부분은 심판들의 입장을 잘 정리하고 전달해 줄 수 있는 분들이 해줘야 하는 일인 것 같다.
Q. 지금 심판계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최소한의 존중이다. 존중 없인 안 된다. 세상 어떤 심판이 일부러 오심을 저지르겠나. 일부러 잘못된 판정을 내리는 주심은 없다. 판정이란 건 주관적이다. 판정은 개인의 시선, 의견에 따라서 비슷한 장면이더라도 조금씩 다를 순 있다. 그래서 최대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키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심판들이 너무 불쌍하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