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영건 대실패 “나 같은 비겁한 선배도 책임 피해 갈 수 없다”

“코치이기에 앞서 선배로서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욕먹지 않으려고 코치가 먼저 타협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한국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자 모 팀 투수 코치가 한 말이다.

이번 대회서 한국은 특히 마운드의 불안으로 무너졌다. 아직 8강 진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몰린 것 만으로도 이 대회는 성공이라 말하기 어렵게 됐다.

사진=일본, 도쿄ⓒAFPBBNews = News1
사진=일본, 도쿄ⓒAFPBBNews = News1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 것이 젊은 선수들의 제구력이었다.

국제 대회의 중압감이나 공인구 문제도 있었겠지만 스트라이크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선수를 국가 대표라고 앞장세워 경기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나름 KBO리그에선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을 모아 대표팀을 꾸렸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낸 선수는 극히 드물었다.

제구력은 많은 훈련이 뒤따라야 만들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투수들이 지옥 훈련을 했다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올 시즌 감독으로 취임한 이승엽 두산 감독과 박진만 삼성 감독이 강도 높은 훈련을 목표로 삼았을 뿐 대부분 구단이 어떻게든 훈련량을 줄이는 데만 전념했다.

A 투수 코치는 “이승엽이나 박진만 감독은 팀 내 입지가 단단한 최고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아무래도 말이 잘 먹힐 수밖에 없다. 이름값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자꾸 훈련량이 줄어들었다. 선수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보니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는 데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나태함이 오늘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B 투수 코치는 “신체적 조건은 우리 선수들이 더 좋은데 일본 투수들보다 구속과 제구력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는 것의 이유를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본도 훈련량이 많이 줄어 들었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캠프 1000구 투구는 기본적으로 소화한다. 우리 야구에는 ‘혹사’라는 유령이 따라다닌다. 보호해주는 것이 최고의 지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투구수 관리를 해주는 것이 투수 코치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누구도 그 한계를 넘으려 하지 않는다. 좋은 소리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 선수들은 영상 세대다. 어릴 때부터 유튜브 등을 이용해 선진 이론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식임에도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들이 했다는 방식을 따라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코치의 말은 더욱 힘을 잃고 있다. 무조건 다그치고 혼내자는 것이 아니라 코치가 코치답게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를 비롯한 비겁한 우리 선배들이 현실과 타협한 것이 오늘날의 대실패를 가져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트라이크존은 넓어졌고 공인구 비거리도 줄었다. 시행 초기엔 어느 정도 먹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타자들이 조금씩 추격을 시작했다. 이젠 투수가 유리하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한국 야구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쓴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하며 자리보전에만 관심이 많은 수많은 ‘비겁한 선배’ 들에게도 적지 않는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앞선 두 코치의 고백을 다시 한번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하는 이유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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