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가 제대로 ‘낭만야구’를 선보였다. 5년 전 장원준과 호흡을 맞춰 129승을 이끌었던 양의지는 5년의 세월이 지난 뒤 두산으로 돌아와 장원준의 130승 달성을 도왔다. 2023년 투·타 수훈선수가 된 장원준과 양의지, 두산 팬들은 이날 하루만큼은 베어스 전성기 그 시절로 타임 슬립을 경험했다.
두산은 5월 24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7대 5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가 뜻깊었던 이유는 장원준의 개인 통산 130승이 나온 까닭이었다.
시즌 첫 1군 등판에 나선 장원준은 선발 마운드에 올라 1,844일만의 승리 투수를 노렸다. 2회 초 4실점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장원준은 관록이 느껴지는 투구로 추가 실점 없이 5회까지 이닝을 이끌었다. 그 사이 두산 타선이 힘을 냈다. 3회 말 5득점 빅 이닝으로 장원준의 승리 투수 요건이 만들어졌다. 이후 두산 벤치는 필승조 계투진을 총동원해 장원준의 승리를 지켰다.
이날 장원준은 5이닝 7피안타 4탈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장원준이 5이닝 이상 투구한 건 2018년 6월 20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5이닝 6실점) 이후 1,798일만의 기록이었다. 장원준은 이날 던진 총 70구 가운데 스트라이크 48개를 기록했다. 최고 구속 140km/h 투심 패스트볼(31개)과 슬라이더(24개), 그리고 체인지업(10개)을 섞어 삼성 타선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5년 전 장원준의 129승을 합작했던 양의지가 두산 복귀 뒤 처음으로 다시 장원준과 호흡을 맞춰 130승을 도왔던 점도 뜻깊었다. 이날 양의지는 타석에서도 3안타 1득점 경기로 날카로운 타격감을 선보였다.
경기 뒤 만난 양의지는 “오랜만에 (장)원준이 형과 호흡을 맞춰서 투구 패턴이 처음에 잘 생각이 안 나더라. 2회에 정신없이 맞은 뒤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비중을 높으니까 조금씩 흐름이 좋아졌다. 오늘 속구 구속 자체가 괜찮았다. 140km/h만 나와도 치기 힘든 공이니까 투심과 포심을 섞어 던지면서 상대 타이밍을 흔들리게 했다. 체인지업도 구석으로 떨어져 범타 유도로 잘 이어졌다”라며 장원준과 호흡을 복기했다.
무려 1,844일을 기다린 장원준의 승리기에 양의지도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운을 얻고자 장원준 라커룸에 막걸리를 올리게 한 것도 양의지의 작품이었다.
양의지는 “솔직히 마음을 비우고 들어갔다. 지금 몇 년째인데(웃음). 마음을 비우니까 잘 풀린 듯싶다. 감독님께서 물어보셔서 공이 괜찮다고 말씀드리니까 5회까지 안 내리셨다. 원준이 형도 편하게 던졌을 거다. 금방 내려갔으면 다음 등판 때까지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원준이 형한테 경기 전 막걸리를 사서 주니까 라커룸에 올리더라. 좋은 기운이 새어나가도록 살짝 뚜껑을 개봉했다”라며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장원준과 함께 수훈선수로 서는 감정은 양의지에게도 남달랐다. 두산 팬들이 장원준을 포함해 김재호, 김재환, 허경민, 정수빈 등이 양의지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보면 저절로 2010년대 중·후반 팀 전성기 시절로 타임 슬립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2015년 한국시리즈 3차전 MVP 장원준의 127구 역투도 떠올랐을 수도 있다.
양의지는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웃음). 오랜만에 같이 투 샷으로 사진도 찍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긴 한다. 같이 오랫동안 야구했으면 좋겠다”라면서 “원준이 형이 이제 많이 늙어서 안쓰럽다. 물론 나도 늙었다(웃음). 옛날엔 형이 돈을 많이 받고 와서 밥을 많이 사줬다. 이제는 내가 (김)재호 형이랑 원준이 형을 열심히 모시겠다”고 힘줘 말했다.
[잠실(서울)=김근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