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2008년 동북고에 재학 중이던 손흥민(당시 16)은 혈혈단신 독일로 떠났다.
함부르크SV 유스팀에서 가파른 오름세를 보인 끝에 18세이던 2010년 정식 프로계약을 맺고 분데스리가 데뷔전까지 치렀다.
쾰른과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힘겨운 주전 경쟁을 이겨내고 2012-13시즌을 기점으로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2골씩 낚으며 분데스리가 상위권 구단이 주목하는 공격수로 거듭났다.
2012-13시즌 처음으로 리그 두 자릿수 득점(12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하지만 함부르크의 잔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유럽 진출 후 처음으로 변화를 주고자 했다.
어린 나이에 함부르크의 골을 책임져야 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최고의 팀이 출전하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대한 갈증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때마침 토트넘, 리버풀 등 잉글랜드 클럽이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다. 두 구단은 구체적으로 영입을 원했고, 리버풀은 손흥민 부친 손웅정 SON아카데미 감독을 앞에 두고 ‘왜 손흥민이 필요한가’에 대한 브리핑까지 했다.
손흥민이 여러 선택지 중에 고른 팀은 19일(한국시간) 2016-17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적으로 상대하는 바이엘 레버쿠젠이었다.
독일 생활 환경과 분데스리가에 익숙했거니와 레버쿠젠에선 챔피언스리그와 출전 기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봤다. 아직 어리기에 2~3년 뒤 독일 최고 클럽 바이에른뮌헨이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꾀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레버쿠젠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레버쿠젠에서 머문 두 시즌 소년 티를 벗고 더욱 완성도 높은 공격수로 거듭났다. 2013-14시즌 12골(컵대회 포함), 2014-15시즌 15골로 득점수가 늘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파괴력만큼이나 안정감이 늘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측면에서 공을 잡으면 무언가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선수였다.
레버쿠젠은 손흥민을 앞세워 한국 기업 LG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서로 ‘윈-윈’이었다.
그러니까 그 티셔츠(유니폼) 냉큼 주시오. 사진(독일 레버쿠젠)=AFPBBNews=News1
손흥민은 2년 뒤 계획대로 다시 한 번 이적을 꾀했다. 행선지는 토트넘이었다. 그 과정에서 레버쿠젠과 깔끔한 마무리를 짓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 프리미어리그 입성에 대한 꿈이 간절했다. 이적료는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 3000만 유로(당시 환율 약 400억원)였다.
이적 첫 시즌 부상 등으로 주전 입지를 다지지 못하는 등 과도기를 겪었던 손흥민은 올 시즌 보란 듯이 반전에 성공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프리미어리그를 이끄는’(거스 히딩크) 선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레버쿠젠은 성장을 위해 꼭 밟아야 하는 발판이었고, 이적 하면서 구단과 대립각을 세운 탓에 바이 아레나(레버쿠젠 홈구장)로 향하는 그의 심경은 복잡미묘 하리라 예상된다. 다른 유니폼의 7번을 달고 바이 아레나를 밟는 손흥민과 그를 ‘제2의 차붐’이라며 응원했던 홈팬들은 각각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여러모로 이들의 재회가 흥미롭다.
19일 새벽 3시45분 레버쿠젠 vs 토트넘홋스퍼 16-17 UEFA챔피언스리그 E조 3차전 SPOTV 생중계
[yoonjinman@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