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 작심발언, ‘폭력’ 고리 끊지 못한 배구판의 자업자득 [MK시선]

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배구계가 ‘폭력 리스크’에 신음하고 있다. 겨울 인기스포츠로 군림하기 시작했지만, 이제 ‘배구판’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폭력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이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남자프로배구 베테랑 박철우(36·한국전력)의 작심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철우는 18일 안산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직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말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일은 바로 12년 전 당한 폭행 피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폭행 가해자가 프로배구 현직 감독이다. 바로 KB손해보험의 이상열 감독이다.

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V리그" 남자부 OK금융그룹과 한국전력 경기에서 한국전력이 학폭 논란으로 이탈한 송명근, 심경섭의 OK금융그룹에 세트스코어 3-1(20-25 25-21 25-15 25-19)로 승리했다. 한국전력 박철우가 상대 블로커를 앞에 두고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사진(안산)=김영구 기자
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V리그" 남자부 OK금융그룹과 한국전력 경기에서 한국전력이 학폭 논란으로 이탈한 송명근, 심경섭의 OK금융그룹에 세트스코어 3-1(20-25 25-21 25-15 25-19)로 승리했다. 한국전력 박철우가 상대 블로커를 앞에 두고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사진(안산)=김영구 기자
최근 배구계는 스타 선수들의 학교 폭력 폭로가 이어지며 ‘초상집’ 분위기다.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스타 이재영·이다영이 시발점이었다. 이어 OK금융그룹 송명근과 심경섭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이 들통났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가해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후속 조치에서 2차 가해 논란이 불거졌다. 흥국생명은 최초 “(이재영·이다영에 대한) 징계보다 선수 상태가 우선이다”는 식의 해명을 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OK금융그룹은 폭행으로 고환이 파열되는 중상해를 입은 것을 두고 ‘부적절한 충돌’이라고 축소해 공분을 샀다.

다시 박철우와 이상열 감독이다. 박철우는 2009년 배구대표팀에 선발됐다가 태릉선수촌에서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 감독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했다. 박철우는 폭행을 당한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철우의 얼굴에는 피멍이 들어있었고 복부에도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사회적인 충격이었다.

당시 이 감독에게 자격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하지만, 대학 감독(경기대), 방송 해설위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한 끝에, 지난해 KB손해보험 감독까지 올랐다. 이 감독은 최근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되자 17일 우리카드와의 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사죄하는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박철우에게 자극이 됐다. 박철우는 18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피가 꺼꾸로 솟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상열 감독을 겨냥한 듯한 멘션이었다. 그리고 이날 학폭 당사자가 소속된 OK금융그룹을 상대로 14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끈 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못했다. 상대 감독으로 마주하는 것도 괴롭다”라는 심경을 고백했다.

이상열 감독 외에도 ‘배구판’에는 폭행 가해자가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바로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이다. 2005년 LG화재(현 KB손해보험) 감독 시절 소속 선수들을 구타해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복귀했다. 이후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을 거쳐 우리카드 감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피해자들이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박철우의 심경은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배구계는 실력만 있으면 폭행 전력에 면죄부를 주는 분위기다. 이번에 학교 폭력이 드러난 당사자들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지도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소속 구단으로부터도 무기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한국배구연맹(KOVO)도 학폭 가해 전력이 뒤늦게 밝혀진 선수들을 퇴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KOVO는 소는 잃고 싶지 않았다. 규정을 만들면서 ‘소급효 금지의 원칙’을 내세웠다. 이에 따르면 퇴출 규정은 이재영과 이다영, 송명근과 심경섭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KOVO 차원의 징계 논의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새로 만든 규정이 아니더라도, 기존 규정으로 징계를 내릴 수 있는데 말이다. 가혹행위에 대한 '배구판'의 안일한 인식에 엿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뭐가 ‘정의’인지 판단이 안 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손님은 다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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