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반말 안하면 X진다” 2006년 WBC, 기적 만든 그의 한 마디

2007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둔 한국 대표팀 버스 안. 갑자기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 둘, 앞으로 존댓말 쓰다 나한테 걸리면 X진다(혼난다). 잊지 마라. 그리고 찬호 너는 말 할 때 ‘암~’ ‘암~’ 좀 하지 마라”

모두가 깜짝 놀라 바라본 곳에는 이종범 당시 대표팀 주장이 앉아 있었고 양 옆으로 투수 박찬호와 외야수 송지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종범 코치가 대표팀 코치 시절, 아들 이정후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크게 터진 목소리와는 달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화를 내기 전부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종범이 짐짓 화가 난 척했던 것은 박찬호와 송지만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73년생 동기지만 아마추어에선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송지만이 프로에 왔을 땐 이미 박찬호가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서로 어색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정상에 서 본 적 있는 선수가 아닌가. 서로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해 다녔고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존댓말부터 꺼냈다.

이종범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안 든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라면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종범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다녀 왔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원한다거나 남다른 행동을 하면 내가 앞장서서 혼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대표팀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나중에 농담도 제법 할 정도로 동료, 선.후배들과 잘 지냈다. 큰 대회는 조직력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인 전력이 뒤질 떈 더욱 그렇다. 어찌 됐건 송지만과 박찬호는 그 이후 말을 트기 시작했고 우리 대표팀은 잘 아는 것처럼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범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선수들도 하나로 묶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민재는 “종범이형이 농반 진반으로 분위기를 이끈 뒤 팀 흐름 자체가 달라졌다. 당시에도 메이저기그 출신들이 적지 않았는데 박찬호가 적응하니 다른 선수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팀 분위기에 잘 따르며 하나가 되려 노력했다. 당시 대표팀엔 정말 매일 같이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종범이형의 역할이 가장 컸다. 최선참이 나서서 권위를 내려놓고 선수들과 하나가 되려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먼지 쌓인 1회 대회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 대표팀에도 이종범 같은 몫을 해낼 선수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가 선발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선수의 존재도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현역 메이저리그 최고의 내야수인 토미 현수 에드먼이 합류할 예정이다. 기량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팀으로서 하나로 뭉칠 수 있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에드먼은 중요한 선수지만 특별 대우를 받아선 안된다 .

모든 선수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고 동일한 스케줄로 움직여야 한다.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하기 위해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그 누구에게도 기 죽지 않고 소신껏 팀을 이끌 수 있는 베테랑의 존재가 중요하다 하겠다.

2023 WBC의 한국 리더는 어떤 선수가 될 것인가. 부드럽지만 강력했던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했던 이종범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고 필요해졌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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