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이렇게 함평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을까. 함평만 다녀오면 늘어나는 투수들의 구속에 KIA 팬들은 인생 처음으로 ‘육성’의 재미를 한껏 느끼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부분 KBO리그 구단이 육성을 외친다. 하지만, 육성에 있어 장기적인 시스템 구축과 맨 파워 형성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KBO리그에서 가장 보수적인 구단으로 꼽혔던 KIA는 가장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다. 독자적인 호크아이 시스템 도입과 더불어 현역 은퇴 뒤 LA 다저스에서 연수를 받은 손승락을 곧바로 퓨처스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것이었다.
손승락 감독은 최근 퓨처스팀에서 나온 성과를 두고 “나 혼자 이뤄낸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나를 믿어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구단 프런트와 함께 뜻이 맞아 한마음으로 움직여준 코치진의 협업이 그 비결”이라고 말한 손승락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다저스 팜을 함평에 그대로 이식하겠단 야심찬 속내도 내비쳤다.
MK스포츠가 6월 1일 함평 챌린저스 필드를 방문해 이제 승락극장 개봉이 아닌 승락스쿨 개강에 나선 손승락 감독의 마음 속 얘길 직접 들어봤다.
오랜만에 함평 챌린저스 필드를 방문했습니다. 올 때마다 정말 야구밖에 할 게 없는 곳이라고 다시 한 번 느낍니다(웃음).
저도 광주에 집이 있는데 1개월에 2~3번 정도밖에 안 갑니다(웃음). 함평에서 자는 게 체력적으로 더 낫더라고요. 여기서 할 일이 너무 많다보니까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다는 걸 인식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단 생각에 즐겁고 힘이 납니다.
전날(5월 31일) 곽도규 선수와 황동하 선수가 모두 1이닝 무실점으로 인상적인 투구를 보여줬습니다. 그 정도 투구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습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선수들이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곽)도규는 오히려 팬들이 있고 흥분되는 상황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것으로 봤어요. 저번에 1군으로 올라갔다가 실패했던 원인을 서로 소통하면서 공감하고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몸 관리나 캐치볼을 언제 해야 할지 그런 노하우를 알려줬는데 잘 따라왔어요. 확실히 어린 애들이 주는 대로 잘 받아먹긴 합니다(웃음).
KIA 팬들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보면서 함평에 ‘승락스쿨’이 개장했다고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이나 SNS 등을 안 해서 그런 걸 잘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에 2군 팀장님께서 말씀해주셔서 그런 단어를 듣긴 했습니다. 현역 시절엔 ‘락형’, ‘승락극장’으로 불렸는데 이제 지도자가 되니까 그런 별명도 붙는구나 생각했죠(웃음). 무엇보다 팬들께서 퓨처스팀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다는 게 고무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다녀온 LA 다저스 연수가 지도자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요.
막상 미국에 가니까 아무도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우연히 투수 파트를 맡는 디렉터가 ‘너는 한국의 리베라라고 들었는데 커터를 어떻게 던졌냐’라고 묻어보길래 같이 캐치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하면서 친해졌죠. 그리고 코치들을 지켜보는데 그들이 직접 선수들처럼 훈련을 직접 소화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직접 같이 몸으로 해보면서 내가 나서서 물어봐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걸요.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투수 파트만 배우러 간 게 아니라 타자, 주루, 수비, 스트랭스, 데이터, 구단 운영 등 모든 파트를 배우러 갔습니다. 투수 파트만 배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구단 직원들과 코치진에게 한국식 바비큐를 계속 사주면서 많은 걸 배웠죠(웃음). 현지 코치진이나 현지 구단 직원만 볼 수 있는 데이터나 노하우들을 나름대로 잘 빼왔습니다.
미국 연수를 갔다가 KIA 구단에 처음 왔을 때는 호크아이 시스템 관련한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습니다.
원래 호크아이 시스템 관련 코디네이터 역할로 시작했다가 구단에서 저의 육성 철학에 공감을 해주셔서 이렇게 감독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도 다저스 팜과 같은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하고 싶단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KIA 퓨처스팀을 시작으로 이런 시스템이 KBO리그 전반적으로 널리 퍼졌으면 해요. 우리 한국야구도 일본야구처럼 160km/h를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인 거죠.
퓨처스팀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무엇입니까. 보통 KIA 타이거즈는 예전부터 그런 부분에서 보수적인 구단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0에서 시작하는 게 더 쉽더라고요(웃음). 전 개인적으로 우리 김잔 운영2팀장님에게 정말 감사드려요. 저와 육성에 있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전적으로 믿어주시고 지원해주신 덕분에 지금 시스템이 완성된 거죠. 보통 구단 프런트라면 자기 직을 걸만큼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김잔 팀장님이 모든 걸 책임지고 제가 요구하는 모든 육성 시스템을 현실로 만들어주셨어요. 꼭 이 얘기는 써주셨으면 합니다.
퓨처스팀 코치진과 호흡도 굉장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다저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이름값이 높지 않아도 같은 방향성을 바라보는 코치들과 한마음으로 뭉치면 육성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구축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함께하는 퓨처스팀 코치들이 제 지도 철학에 다들 공감해주고 실천해주시니까요.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절대 그들을 질타하지 말고 칭찬만 하자는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됐습니다.
선수들도 더 자신감을 얻겠습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타자를 예로 들면 2스트라이크 노볼이라도 눈치 안 보고 풀 스윙을 하는 자세, 그런 걸 심어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다른 구단들로부터 ‘KIA 타이거즈가 육성을 잘한다. 이런 시스템 배워야겠다’라는 소리를 꼭 듣고 싶습니다.
올 시즌 1군에서 맹활약하는 최지민 선수가 ‘승락스쿨’의 최대 수혜자로 꼽힙니다. 어떤 방향으로 발전이 있었던 겁니까.
최지민 선수가 호크아이 시스템 수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크아이를 통해 지민이의 투구 과정에서 꼬임 동작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먼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AT 파트, 스트랭스 파트와 협업을 했어요. 다저스에서 가장 잘하는 게 이런 협업이거든요.
지민이를 두고 스트랭스 파트와 같이 보면서 꼬임이 얼마나 더 될 수 있는지, AT 파트와는 골반이 어떤 움직임이 나올 수 있는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왜 공이 오른쪽으로 계속 빠지는지 구속을 높이면서 존으로 자연스러운 투구를 위한 이상적인 교정을 호크아이를 통해서 계속 했던 겁니다.
실제로 이렇게 구속이 20km/h 가까이 비약적인 상승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지민이가 처음 왔을 때는 구속이 130km/h까지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라 누군가 시켜야 잘할 수 있는 얘였죠. 초반엔 안 풀려서 태도가 축 저지더라고요. 그런 걸 보고 운동하지 말라고 얘기까지 했는데 울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한 기억도 납니다. 스스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발전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그런 게 잘 풀리더니 질롱코리아에 가서 완전히 만개했죠.
결국, ‘승락스쿨’ 최고 수강생이 됐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지민아 결국 내가 한 게 아니라 네가 한 거다(웃음). 그리고 저는 방향성만 제시해주는 역할이고요. 투수 파트는 이정호, 이상화 코치가 다 해주시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코치들이 감독 입만 바라보는 걸 싫어하거든요. 코치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코칭을 마음껏 하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얘길 계속 들어보면 파트별 협업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타격코치도 투수에게 ‘던질 때 손이 잘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투수에 상·하체 변화를 줄 때 스트랭스 파트에선 큰 근육을 더 만들자, AT 파트에선 이 동작은 부상 위험이 있다고 의견을 주는 거죠. 이렇게 모든 파트 의견을 정리해 회의하고 결론을 내는 게 협업입니다. 이렇게 퓨처스팀 코치님들뿐만 아니라 재활 파트를 맡아주는 최희섭, 서재응 코치님도 정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야수 파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점은 무엇입니까.
다저스에서 들은 건 투수는 빨리 나올 수 있어도 야수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최소 3~4년 이상, 늦으면 6년까지도 기다리면서 야수를 육성할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결과물은 반드시 나올 것으로 믿어요. 야수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체력’에 대한 인식이었죠.
체력이요?
투수들은 일주일 내내 경기에 나가는 경우가 없지만, 야수들은 144경기를 항상 그라운드 위에서 뛰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장기 레이스를 뛸 수 있는 체력이 먼저 필요해요. 단순히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운동하는 걸 떠나서 운동하는 만큼 똑같은 휴식을 주는지가 관가장 중요합니다.
회복과 비축의 시간을 주는 군요.
야수 파트에선 웨이트 트레이닝을 파워, 유연성, 순발력 등으로 나눠서 강화 훈련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휴식 시간을 충분히 주고 퓨처스리그 경기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어요. 아침 일찍 웨이트 프로그램을 소화한 뒤 2시간 30분 정도를 쉬는 겁니다. 훈몸에 100% 힘이 있다면 20%만 경기 전에 풀고 80%를 경기에 다 쏟아내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실전 경기에서 순간적인 운동 능력이 잘 폭발해서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선수들도 그 효과를 체감하고 있겠습니다.
처음엔 너무 아침 일찍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니까 너무 피곤해서 ‘이걸 왜 시킬까’라는 반응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까 경기 시간엔 몸 상태가 회복이 된다는 걸 느낀 거죠. 휴식의 중요성은 과거 히어로즈에 있을 때부터 직접 느꼈던 거라 확신이 있어요. 아마 이런 과정을 잘 배운 유망주라면 1군에 올라가서 무서운 퍼포먼스를 보여줄 겁니다.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다저스팜 시스템을 이식하려고 할 때 한국야구 현실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걱정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은 두려움이나 걱정, 상처가 더 많아요. 갑작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죠. 그래도 처음엔 주입식으로 다 하도록 했는데 선배들 덕분에 시스템이 잘 자리 잡았어요. 특히 (이)우성이나 (고)종욱이가 올해 2군 캠프에 남았었는데 솔선수범해주면서 후배들도 잘 따라와 덕을 본 거죠. 지금 두 선수가 1군에서 잘하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현역 시절 FA 시장에서 KIA로 올 뻔한 인연이 이제야 이어진 듯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게 신기합니다. 선수 때 도움을 못 줬던 걸 지도자로서 도움을 주라는 하늘의 뜻인가 싶어요(웃음). 구단에선 현역 시절 때 열정적으로 훈련을 소화했던 장면 때문에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눈치를 안 보는 사람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정말 하루하루 타이거즈 퓨처스팀에 도움이 돼야 한단 절박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이루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권위의식이 있거나 감독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한국야구를 이끌 후배들이 즐겁고 행복한 야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예전에 선수들을 자꾸 찍어 누르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야구를 안 했으면 하는 거죠. 정말로 소신 있게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게 아니면 제가 지도자를 할 이유는 사실 별로 없어요. 아 또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최근 몇 년 동안 KIA 육성을 두고 스카우트팀의 문제라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스카우트 파트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곽도규 선수는 5라운드에서 뽑았지만, 지금 구속 150km/h 가까이 공을 던지잖아요. 이러면 스카우트가 원석을 잘 뽑은 게 아닌가요. 스카우트 파트에서 정말 좋은 원석들을 퓨처스팀에 보내주고 있단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스카우트와 육성 파트도 결국 협업 가치 아래 함께 시너지 효과를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승락스쿨’을 응원하는 KIA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까.
KIA 팬들께서 최근 퓨처스팀에 큰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멀어도 함평에 가끔씩 와주시면 퓨처스팀 선수들이 얼마나 밝아지고 좋아졌는지를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오시면 마음껏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을 수 있으니까 변화한 함평을 자주 보러 와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은 야구장 근처에 꽃도 예쁘게 피었으니까 꼭 놀러오세요. 감사합니다(웃음).
[함평=김근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