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표 히어로물을 탄생시켰다. 배우 라미란이 영화 ‘시민덕희’를 통해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는 덕희로 분해 인생 캐릭터를 또 완성했다.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인 덕희에게 사기 친 조직원이 구조 요청을 하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추적극을 그린다. 라미란은 극중 덕희를 맡았다.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시민덕희’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지난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경찰에 제공해 총책을 잡는데 기여했다. 다만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으러 중국을 가는 설정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더해진 허구 장치다.
“기대를 많이 안 하신 건지 아니면 뭔지 모르겠지만 생각과 달랐다는 분들이 많았다. 더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우회가 있었다고 말을 해주시더라. 작품 처음 시작할 때, 덕희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고 존경스러웠고 실화라고 하는 지점이 마음이 들었다. 가공의 인물이라면 더 세고 더 갈 수 있었겠지만, 실화라는 힘이 있었고 단단함이 분명하게 있어서 하고 싶었다. 오래 기다린 끝에 개봉하게 돼 더 반갑다. ‘드디어 이제, 이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좋았다.”
여성 주체적인 캐릭터를 또 한 번 맡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연약하고 주체적인 거 말고 하늘하늘한 거... 저는 건장해서 그런 역할이 안 들어오는 것 같다. ‘시민덕희’도 감독님도 저를 생각하고 쓰셨다는데 저에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신인 감독과 함께 그려 나간 ‘시민덕희’를 통해 라미란은 스스로 비겁자라고 느꼈다며 “나라면 못했을 것”이라며 실존 인물에 대한 리스펙을 보냈다.
“저는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제가 덕희였다면 저는 비겁자더라. 저렇게 못 했을 것 같아. 뺏기고 울고 좌절하고 제보받아도 경찰에게 넘겨주고 해결해주길 기다렸을 것 같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덕희가 그래서 더 멋있었다. 촬영 전 실존 인물을 보진 않았지만, 시사회 때 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나 단단하신 분이고 멋있더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작품으로서 별개로 생각하고 촬영했다는 라미란. 덕희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면서 자신을 스스로 투영한 부분은 없었을까.
“살?(웃음). 음... 제 안의 모습일 것 같다. 여러 인물을 연기하지만 고만고만한 게 제 껍데기를 통해 나오기 때문에 라미란을 배제할 순 없다. 탈바꿈하고 그런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점에서든 제가 묻어있을 거로 생각한다. 덕희는 그 안에 여러 가지 감성 중에 강인함을 꺼냈다. 사실 외면적으로 지쳐있고 힘든 과정을 겪고 있어서 마른 모습을 하려고 했고, 그때 김성자 씨도 말랐었다. 근데 다이어트에 실패했다. 외형적인 것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덕희가 이렇게 풍족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도 생각했다. 근데 안되더라. 워낙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도 사실 (영화를 보고) 거슬렸다. 몰입에 방해받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 됐다. 찍을 때는 뱃살이 안 보이게 연기하면 되지 싶었는데 뱃살이 보이더라.”
감독은 덕희 캐릭터에 라미란을 대입하고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라미란 역시 “제가 아니었으면 다른 배우가 떠오르나요?”라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저도 생각해 봤거든요. 다른 배우가 하면 어떨까 싶었다. 다른 작품을 할 때도 대입해보는데, 다른 배우가 잘 어울릴 때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덕희는 제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젠 자신 있게 그렇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작발표회, 시사회, 메이킹 영상 등 배우들과의 케미가 참 좋아 보였다. 함께 합을 맞춘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물었다.
“케미는 밥을 같이 먹어서 나온 자연스러운 케미였던 것 같다. 현장에서 아무리 뭐가 있어도 만나서 데면데면하게 연기해도 그게 안 나온다. 친근함이나 그런 게 연기를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촬영 전에 밥을 많이 먹으려고 한다. 영화 현장도 지방 촬영이 많으니까, 붙어 다니면서 시끌벅적하게 재미있게 했다. 이무생 배우는 액션 호흡을 잘 맞췄다. 정말 많이 맞았다. 나중에는 로맨스를 기약한다(웃음). 염혜란 배우는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좋은 작품을 하면서 인정 받을만큼 받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쌍둥이로 나오는 작품을 기획했으면 한다. 쌍란으로. 약간 성격도 비슷한 면이 있다. 참하고 낯가리고 이런 게 비슷하다. 공명은 멍뭉미 강아지에서 군대를 다녀온 후 능글맞은 개가 됐고, 은진이는 ‘연인’으로 쑥쑥 컸다.”
극중 총책에게 돈을 건네받는 신에서 여러 감정이 얼굴에 담겨 시선을 사로잡았다.
“총책을 잡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덕희의 자존감 존엄성. 쪽팔리지 않음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저 스스로가 약간 소름 돋았던 장면은 화장실에서 나와서 걸어갈 때 고개를 드는 장면이 짜릿한 장면이지 않았나 싶다. 실제 저였다면 저는 일단 중국에 안 갈 것 같다. 만약 또 돈을 준다? 하... 안 받을 것 같다.”
‘시민덕희’는 점점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고, 피해자들의 일상 복귀를 응원하는 마음이 담긴 영화다.
“저는 피해를 본 적은 없는데 주변 분들은 꽤 많이 있다. 통장을 탈탈 털린 분도 있고 빚을 끌어서 1억을 보내기도 한 친구도 있다. 영화를 보고 공유하고 경각심을 느끼고, 피해자들이 바보 같아서 그런 게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당했다는 걸 공유하면 거를 수 있었으면 한다. 저희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해 사례 모음 같은 거를 보는데 피해자들이 많이 숨고 돌려받는 분은 전무하더라. 창피해하시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김나영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