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던졌고 후회없이 떠납니다. 지금 (삼성에) 주시는 과분한 사랑 앞으로도 아낌없이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은 마지막까지 ‘끝판대장’ 다웠다. 후회 없이 씩씩한 모습은 물론이고, 삼성을 향한 애정 또한 여전했다.
오승환은 3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가 삼성의 5-0 승리로 끝난 뒤 은퇴식을 가졌다.
명실상부 오승환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다. 2005년 2차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삼성의 부름을 받은 뒤 이날 전까지 KBO리그 통산 737경기(803.1이닝)에서 44승 33패 19홀드 427세이브 평균자책점 2.32를 적어냈다. 2006년과 2011년에는 각각 4승 3패 평균자책점 1.59, 1승 평균자책점 0.63과 더불어 47세이브를 수확, 아시아 한 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오승환을 앞세운 삼성은 2005, 2006, 2011, 2012, 2013년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시즌 헹가래 투수는 모두 오승환이었다.
해외 무대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2014~2015년 일본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127경기(136이닝)에 출전해 4승 7패 12홀드 80세이브 평균자책점 2.25를 작성했다. 2016~2019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콜로라도 로키스 등에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통산 232경기(225.2이닝)에 출격, 16승 13패 45홀드 42세이브 평균자책점 3.31을 올리기도 했다. 한·미·일 통산 세이브 개수는 무려 549개에 달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2020년 KBO리그로 복귀했으나,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2024시즌에는 58경기(55이닝)에 나섰지만, 3승 9패 2홀드 27세이브 평균자책점 4.91에 그쳤다. 그해 삼성이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엔트리에서 오승환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절치부심한 오승환은 올해 반등을 노렸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개막 전 모친상을 당해 슬픔에 잠겼고, 허벅지 부상까지 겹쳤다. 결국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오승환은 각 구장들을 돌며 은퇴 투어를 가졌고, 이날 은퇴 경기 및 은퇴식을 가졌다. 삼성이 5-0으로 앞서던 9회초에는 불펜 모든 투수들의 인사 속에 마운드에 올라 오랜 동료였던 최형우를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오승환의 은퇴식이 펼쳐졌다. 외야 그라운드를 통해 오승환이 입장했으며, 상징과도 같은 종소리 및 ‘라젠카 세이브 어스’가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울려퍼졌다. 오승환은 야구선수협회, 삼성 선수단, 이종열 삼성 단장, 유정근 삼성 대표이사 등에게 선물을 받았다. 추신수,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김강민 등 오승환을 보기 위해 찾아온 82년생 프로야구 선수들은 오승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뒤이어 전광판을 통해 은퇴 축하 영상 편지가 송출됐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활약 중인 다르빗슈 유, 전 팀 동료들인 야디어 몰리나, 애덤 웨인라이트, 놀란 아레나도, 찰리 블랙몬, 옛 스승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 가수 다이나믹 듀오, 배우 김성균, 개그우먼 이수지, 개그맨 조세호, 배우 마동석 등이 오승환의 은퇴를 축하하며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이후 오승환이 고별사를 낭독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먼저 “그는 안녕하세요. 오승환입니다. 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 주시기 위해 이렇게 많은 발걸음을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늘 승리만 생각하며 걸어 나오던 이 길을 이렇게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걸으니 가슴이 벅차고 한편으론 먹먹하다. 평소 인터뷰에서 짧게 감사의 인사만 드렸습니다만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무대인 이 그라운드에서는 여러분을 마주보고 오늘 제 진심을 직접 전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저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야구, 가족, 삼성 그리고 팬 여러분들이다. 저에게 야구는 말로 다할 수 없이 특별한 존재, 인생 그 자체였다. 공을 던지는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매 순간 행복했다. 모든 조건을 타고난 편도, 모든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야구가 알려줬다”며 “프로 무대 처음 올라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공을 던지던 그 순간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제가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으로 팀이 승리하고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행복했고 큰 희열을 느꼈다. 더 잘하고 싶어 쉬지 않고 노력했고, 그 노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 또 선택의 기로에 선다해도, 저는 주저없이 야구를 택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삼성을 향한 고마움도 표했다. 오승환은 “삼성. 삼성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팀이었다. 저는 남들보다 늦게 프로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엔 부상도 있었고 그저 평범한, 내세울 만한 성적도 없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저는 제 가능성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저를 삼성 구단이 선택해줬다.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삼성이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뛰었기에 다섯 번의 우승을 팬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고(故) 이건희 회장님과 이재용 회장님, 유정근 사장님 그리고 구단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늘 함께 땀흘리며 싸운 동료들, 그리고 늘 맞서 싸워준 상대 선수들에게도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여러분 모두가 있었기에 제 야구인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지금의 동료들과 함께 삼성의 아홉번째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팀에 자부심을 갖고 후배들이 꼭 이루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표정에 티가 나지 않는 돌부처였지만,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도 부모님과 형들은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주셨다. 아버지. 언제나 내색하지않고 묵묵히 보여주신 그 사랑이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돌부처 오승환을 있게 한 건 마운드 위에서는 감정을 숨기라고 알려주신 아버지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 형들, 제가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해주었고, 덕분에 든든하게 집중할 수 있었던거 같다. 정말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계속해서 “지난 수년 간은 사랑하는 아내와, 저의 아들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항상 제곁을 지켜주었다. 선수 생활을 함께 오래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난 몇 년 힘든 순간 마다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공을 잡을 수 있게 저를 단단하게 잡아준 것은 와이프와 아들 덕분이다. 기억 못 할 수도 있는 아들에게 오늘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아빠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끝까지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너와 이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는 것을 꼭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면서 “사랑하는 와이프 김지혜. 옆에서 나를 지탱해주고 어쩌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짐들을 함께 짊어져주고 오승환의 아내로서 서준이의 엄마로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당신이 있었기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고 앞으로 야구 선수가 아닌 남편으로 서준이 아빠로서 더 많이 노력하겠다. 앞으로 우리 더 재밌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였다. 오승환은 “무엇보다 오늘 이 자리에 계셨으면 했던 분이 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어머니다. 경기장에 오셔도 제 투구를 끝까지 보지 못하시고 도중에 나가시곤 했던 어머니. 늘 제 걱정이 먼저셨던 분이셨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저를 믿어주셨고,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셨다. 은퇴투어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꽃을 받았는데, 생전 좋아하시던 꽃도 더 많이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야구선수 아들을 둬서 누구보다 마음 졸였을 어머니, 오늘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이제 걱정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오늘 이 순간을 하늘에서도 함께 보고 계실거라 믿습니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물론 팬들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게 또다른 특별한 존재인 팬 여러분. 오늘의 오승환이 있기까지 저의 존재와 영광은 모두 팬 여러분 덕분이었다. 부족한 저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제가 조금이나마 팀에 보탬이 될때마다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때로는 야유도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 어떤 이는 박수칠 때 떠나라고 말하지만, 저는 끝까지 박수를 얻기 위해 노력한 제 길에 후회가 없다. 공 하나에 끝까지 제 모든 것을 다해 던지는 모습을 후배들과 제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덕분에 저 오승환, 후회없이 던졌고 후회없이 떠난다”고 진심을 드러냈다.
더불어 “한 가지 여러분께 부탁을 드리자면, 제가 가족만큼 사랑하는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금 주시는 과분한 사랑 앞으로도 아낌없이 보내주시길 바란다. 강민호, 구자욱, 김재윤, 원태인 선수부터 2군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까지 모두가 이 팀의 미래다. 또한 저를 이끌어 주셨던 선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제가 끝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선수들만이 아니라, 보이지않는 곳에서 늘 헌신해 주신 분들 덕분이다.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유니폼을 제일 늦게 벗는 트레이닝 코치님들. 진심으로 고맙다. 특히 오늘 이렇게 멋진 은퇴식을 준비해주신 마케팅팀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끝으로 오승환은 “저는 이제 유니폼을 벗지만, 여러분의 함성과 박수는 제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함성과 박수를 그들에게 더 많이 부탁드린다. 저는 마주보고 계신 팬 여러분들과 앞으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여러분과 함께 한국 야구를 사랑하겠다. 여러분의 응원 속에서 살아온 시간, 제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 여러분 감사하다. 여러분의 모든 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글을 마쳤다.
이어 영상 편지를 통해 후배들 및 팬들로부터 진심을 들은 오승환은 가족들에게 꽃다발 및 선물을 전달받은 뒤 정들었던 푸른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영구 결번 행사가 진행됐고, 오승환은 팀 동료들과 포옹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렇게 뜨거웠던 오승환의 은퇴식은 막을 내렸다.
[대구=이한주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