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를 받아야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16일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현대캐피탈과 2025-2026시즌 V-리그 3라운드 현대캐피탈과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실에 들어온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40)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한선수는 이날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팀 동료 유광우(40)에 이어 두 번째로 V-리그 남자부에서 만으로 40대 현역 선수가 됐다. 옛 표현을 쓰면 ‘불혹’, 시쳇말로 ‘영포티’다.
이날 한선수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팀의 3-0 완승을 이끌며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을 즐겼다.
경기 도중에는 네트를 넘어갈 뻔한 리시브를 손끝으로 네트 바로 앞에서 토스로 연결하며 오버넷을 막기도 했다. 상대 벤치가 비디오 판독까지 요청했지만, 판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는 “토스할 때 네트에 넘어가면 오버넷이 나온다. 그거를 인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잡으면 공에 손가락이 눌리면서 무조건 넘어간다. 최대한 안 넘어가려고 (손가락) 두 개로 토스한다던가 구부려서 한다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헤난 달 조토 갇독은 “나는 서른셋에 현역에서 은퇴했다”며 “마흔살 선수가 경기에 들어갈 때와 끝날 때 차이가 없다. 체력적인 준비가 잘돼있고 몸 상태도 좋다는 뜻이다. 여기에 멘탈도 강하다”며 한선수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 시즌 32경기에서 87세트 소화에 그쳤던 한선수는 이번 시즌 14경기에서 52세트 소화하며 591개의 세트를 성공시키며 팀의 주전 세터로 활약 중이다. 세트당 세트 횟수 11.365회로 KB손해보험의 황택의(11.688)에 이은 리그 2위다.
하루 뒤 가족들과 생일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밝힌 한선수는 “그만큼 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많은 분이 아직도 응원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다. 좀 더 열심히 뛰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마흔살이 된 소감을 전했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됐던 그는 “그때는 (마흔까지 뛸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프로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며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18시즌 동안 뛰며 대한항공의 역사와 함께했다. 세터상 2회(2009-2010), 2010-2011), 베스트7 3회(2015-2016, 2018-2019, 2019-2020), 2022-2023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 2024-2025시즌 20주년 베스트7 세터 부문에 선정됐다. 그리고 대한항공의 다섯 차례 우승에 기여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이 기록한 V-리그 우승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마흔살의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다른 2~30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훈련하고 있다. “감독님이 웨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주 4회를 빠지지 않고 채우려고 한다. 하루 쉬면 그다음에 반드시 채운다. 나도 훈련을 같이하려고 한다. 하나둘 빠지다 보면 핑계가 된다. 핑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핑계를 만들면 은퇴해야 한다. 선수들과 같이 가려고 더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로도 그는 “핑계 대지 않는 것”을 꼽았다. “내 잘못을 내가 인정하고 있다. 절대 핑계를 대지 않는다. ‘나는 나이가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나이를 핑계 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그는 10시즌 동안 갖고 있던 주장 자리를 정지석에게 물려줬다. “대한항공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며 말을 이은 그는 “신인 때부터 이렇게 같이 온 선수들이 많고, 팀이 이뤄낸 결과도 있다 보니 애착이 많이 간다. 지금 주장 자리를 내려놨지만, 여전히 팀의 일원이다. 세터는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주장 자리는 지석이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주장 자리를 내려놓은 소감도 전했다.
새로운 주장 정지석에 대해서는 “한순간에 잘할 수는 없다. 지석이는 자기 플레이가 돼야 하는 선수다. 그리고 팀의 중심인 선수다. 먼저 자기 플레이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팀을 더 끌고 나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올해가 18번째 시즌인 그는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는 “계약이 아마 내년 까지일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19시즌에서 끝날지, 20시즌에서 끝날지 모르겠다. (몸 상태는) 지금 아주 좋다. 우선 이번 시즌을 끝내고 얘기하겠다. 미리 결정하면 안 된다. 한 시즌 한 시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한 시즌에 올인하고 그다음에 다음 시즌에 올인하고 이래야 한다”며 당장은 2025-2026시즌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인천= 김재호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