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이틀째, 애도의 방식은 조금 달라졌다. 비보가 전해진 첫날의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윤석화가 평생 지켜온 무대와 그가 남긴 ‘연극의 자리’를 되새기는 시간만이 남았다.
배우 윤석화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째인 2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연극계 동료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이어졌다. 큰 소리의 애도보다, 함께 무대를 지켜온 시간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공간을 채웠다.
윤석화는 지난 19일 오전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2022년 악성 뇌종양 수술 이후에도 그는 무대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고, 2023년 연극 ‘토카타’에 짧은 우정 출연으로 관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빈소에는 생전 고인과 호흡을 맞췄던 연극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과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연극 ‘햄릿’을 떠올리며 “작품을 마친 뒤 다시 좋은 무대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출가 손진책은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먼저 간 선배들이 많다”며 “그곳에서도 분명 좋은 연극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추모했다. 빈소 한편에는 박정자, 고두심 등 연극계를 함께 이끌어온 동료들의 근조 화환이 놓였고, 문화예술계 선후배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1980~1990년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한 1세대 스타 배우였다. 1983년 ‘신의 아그네스’를 통해 폭발적인 존재감을 각인시킨 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햄릿’, ‘마스터 클래스’ 등 수많은 작품으로 무대를 지켰다.
뮤지컬 ‘명성황후’ 초대 명성황후 역을 맡았고, 60대에도 무대에 올라 오필리아를 연기하며 나이와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이어갔다. 배우를 넘어 제작자, 기획자, 연출자로 활동하며 공연예술의 토대를 고민해온 점 역시 윤석화를 특별한 이름으로 남겼다.
별세 이틀째가 되자, 빈소에는 ‘떠난 배우’보다 ‘남겨진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윤석화가 평생 지켜온 무대, 그리고 그가 만들어온 연극의 기준과 태도에 대한 기억이었다.
고인의 발인은 21일 오전 9시에 엄수되며, 장지는 경기 용인에 마련된다.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배우 윤석화의 이름은, 이제 한국 연극이 지나온 한 시대의 자리로 남게 됐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