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대표팀에 뽑혔는지 증명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한국 야구를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8강)로 인도한 노경은(SSG랜더스)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1라운드(조별리그) C조 최종전에서 데이브 닐슨 감독의 호주를 7-2로 격파했다.
이로써 호주, 대만 등과 나란히 2승 2패를 기록했으나, ‘최소 실점률’에서 앞선 대표팀은 2위로 2라운드행 막차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이 WBC 2라운드에 진출한 것은 지난 2009년 대회 이후 17년 만이다. 2006년 초대 대회 4강 진출, 2009년 대회 준우승을 거뒀던 한국은 2013년, 2017년, 2023년 모두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노경은의 활약이 눈부신 경기였다. 경기 초반 갑작스런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호주 타선을 꽁꽁 묶었다.
한국이 이날 최소 실점률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5점 차 이상, 2실점 이하 승전보를 적어내야 했다. 1~3차전에서 흔들렸던 투수진의 분발이 필요했던 상황. 이런 와중에 노경은은 예상치 못하게 한국이 2-0으로 근소히 앞서던 2회말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선발이었던 손주영(LG 트윈스)이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까닭이다.
흔들릴 수도 있었으나, 노경은은 침착했다. 선두타자 로비 글렌디닝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지만, 릭슨 윈그로브를 2루수 병살타로 유도했다. 이어 로비 퍼킨스는 투수 직선타로 처리했다.
한국은 3회초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타점 우중월 적시 2루타와 문보경의 1타점 중전 적시 2루타로 2점을 더했다. 기세가 오른 노경은은 팀 케넬리를 2루수 땅볼로 막아냈다. 트래비스 바자나를 상대로는 3볼에 몰리기도 했으나, 곧바로 삼진을 뽑아냈다. 이어 커티스 미드는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며 이날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최종 성적은 2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총 투구 수는 28구에 불과했다. 이 같은 노경은의 활약을 비롯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대표팀은 결국 전세기를 타고 2라운드가 펼쳐지는 미국 마이애미로 향하게 됐다.
경기 후 노경은은 “등판은 경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던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짜냈다”며 “제가 팔이 빨리 풀리는 걸 김광삼 대표팀 코치님이 알고 계셨고, 저도 당장 나가겠다고 했다”고 등판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003년 1차 지명으로 두산 베어스의 부름을 받은 노경은은 이후 롯데 자이언츠를 거친 뒤 2022시즌부터 SSG에서 활약 중인 불펜 자원이다. 통산 638경기(1470이닝)에서 89승 101패 13세이브 121홀드 평균자책점 4.71을 마크했다.
특히 최근 활약이 좋았다. 2023시즌 9승 5패 2세이브 30홀드 평균자책점 3.58을 올렸으며, 2024시즌에는 8승 5패 38홀드 평균자책점 2.90을 작성, 최고령 홀드왕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존재감은 컸다. 3승 6패 3세이브 35홀드 평균자책점 2.14를 찍으며 본인이 앞서 본인이 세웠던 최고령 홀드왕 기록을 경신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은 노경은은 이번 WBC에서 지난 2013년 대회 이후 13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그는 “내가 왜 대표팀에 뽑혔는지 증명한 것 같아 마음에 짐을 덜었다. 조금이나마 팀에 도움이 돼서 부담을 내려놨다”며 “마지막 대표팀을 좋게 장식해서 다행이다.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돼서 영광”이라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1984년 3월 11일생으로 우리 대표팀 최고령 선수인 노경은은 미국으로 가는 전세기 안에서 42세 생일을 맞이한다. 그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상공에서 생일을 보내게 됐는데 너무 뜻 깊은 생일이 될 것 같다”고 배시시 웃었다.
이제 대표팀은 마이애미에서 결코 쉽지 않은 적수들을 상대로 야구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노경은은 “미국에서는 선수들 모두 즐기자는 마음가짐이지만, 마운드 위에서는 다시 어떻게든 짜낼 것”이라며 “단기전 특성상 한 경기 지면 끝이니까 매 경기 이기려고 준비를 잘하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이한주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