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걸그룹의 쇼케이스 현장은 대체로 풋풋하고 발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17일 서울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 유스피어(USPEER)의 첫 번째 미니앨범 ‘바이트 디스트릭트(BITE DISTRICT)’ 발매 현장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현장에는 이들이 지난 1년간 견뎌냈을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데뷔 불과 6개월 만의 전속계약 종료, 소속사 이전, 그리고 건강 문제로 인한 멤버 여원의 탈퇴까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K팝 아이돌 시장에서 갓 데뷔한 신인이 감당하기엔 사실상 ‘해체’ 수순에 가까운 매서운 풍파였다.
하지만 기자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련은 이들에게 독이 아니라 득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스피어가 무대 위에서 가장 반짝였던 이유는 그 혹독한 벼랑 끝에서 단단하게 벼려진 ‘압도적인 팀워크’ 덕분이었다.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 팀이 더 끈끈하게 뭉친 것 같다.” 당찬 서유의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1년 만의 컴백이라 재데뷔 느낌이지만, 떨림보다 설렘이 크다”는 채나, “더 단단해진 유스피어로 돌아왔다”는 다온의 목소리에는 위기를 넘긴 자들만의 여유마저 배어 있었다. 새롭게 팀의 주장을 맡은 시안의 리더십 아래 똘똘 뭉친 이들의 퀄리티 높은 무대는 지난 1년의 공백을 단숨에 지워냈다.
뻔한 청순 발랄? ‘위키드 게임’의 영리한 진화
이번 앨범 ‘바이트 디스트릭트’는 데뷔 싱글 ‘스피드 존(SPEED ZONE)’에서 보여준 스포티한 무드를 벗어던지고, 유스피어만의 구역(District)을 개척하겠다는 영리한 확장을 보여준다.
특히 타이틀곡 ‘위키드 게임(WICKED GAME)’의 완성도가 매섭다. 중독성 강한 훅에 감성적인 사운드를 세련되게 얹어냈고, K팝 히트 메이커 서지음 작사가가 참여해 사랑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소녀들의 풋풋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한 남자를 두고 앙큼한 작전을 펼치는 ‘귀여운 마녀’ 콘셉트는, 뻔한 청순이나 걸크러시로 양분된 신인 걸그룹 시장에서 유스피어만의 확실한 시각적 무기로 작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안무의 디테일이었다. 여섯 멤버가 빈틈없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 칼군무 속에서도, 각자의 엉뚱하고 발랄한 표정 연기가 끝까지 펄떡이며 살아 숨 쉰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들의 눈부신 에너지는 단단해진 팀워크가 단순한 멘트가 아니라 퍼포먼스의 완벽한 합(合)으로 증명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중소기획사 글로벌 도약 지원’ 사업에 선정되며 객관적인 잠재력까지 인정받은 유스피어. 불확실했던 1년의 캄캄한 터널을 지나, 서로를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한 채 다시 섰다. 뻔한 온실 속 화초보다 비바람을 맞고 자란 들꽃이 더 끈질기고 강한 법이다. 아픔을 딛고 비로소 진짜 날개를 펼친 이 소녀들의 눈부신 제2막을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한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