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콘텐츠가 시대의 아픔이나 민감한 사회적 현주소를 서사 안으로 끌어들일 때, 창작자와 배우는 거센 파도를 각오해야 한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바로 그 한가운데에 섰다.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으로 머리에 총상을 입고 46년간 경련과 환청에 시달려 온 환자 오상범(하성광 분)의 사연을 극 전면에 내세웠다. 후반부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인물 지두석 전 대통령까지 등장하며 역사 왜곡 및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방영 중단 및 제작 과정 검증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등장해 하루 만에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얻었고, 주연 배우 김지원의 소셜미디어에는 “좌파 성향 드라마에 왜 출연했느냐”, “작품을 불매하겠다”는 도 넘은 악플 테러가 빗발쳤다.
여기에 8회에서는 현실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의료 공백 및 의료진 파업’ 이슈까지 정면으로 건드리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닥터X’의 기세는 거센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최신 방송된 7회 시청률은 전국 16.5%(분당 최고 17.5%)를 기록하며 주간 전체 채널 통합 시청률 압도적 1위에 올랐고, 이어진 8회 역시 전국 15.6%로 일일 전체 1위 왕좌를 굳건히 지켜냈다. 앞선 6회 방송에서는 전국 가구 기준 19.5%, 분당 최고 21.3%로 역대 SBS 금토드라마 시청률 5위에 오르는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한 바 있으며, 주연 김지원은 TV-OTT 통합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자극적인 이념 검증과 사회적 악재마저 완벽하게 흡수한 채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휩쓰는 파죽지세다.
이 흥행 돌풍의 최전선에는 타이틀롤 계수정을 연기하는 배우 김지원의 뚝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전작 ‘눈물의 여왕’ 속 화려한 재벌 3세 홍해인의 이미지를 깨끗이 지워내고, 수수한 옷차림과 거친 단발머리, 묵직한 중저음 딕션으로 독보적인 메디컬 다크히어로를 완성했다.
계수정은 권력에 눈먼 의사들을 향해 “너네 진짜 후져”라며 거침없는 일침을 가하고,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라는 묵직한 선언으로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8회에서 그려진 의료진 파업 혼란 속에서도 “환자의 생명이 최우선”이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실에 들어서는 결단력은 계수정이라는 캐릭터에 강렬한 진정성을 부여했다.
수술실 밖에서는 반전 매력도 빛난다. 실제 전문의들도 감탄한 섬세한 수술 술기 연기를 뽐내다가도, 정시 퇴근을 고수하고 달콤한 디저트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엉뚱한 허당미를 오가며 인물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7·8회에서는 구서대학교 병원장 부승권 역을 맡은 배우 손현주와의 팽팽한 연기 앙상블이 극의 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과거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표로 나섰던 의대 졸업생 부승권의 초심과, 현재 의료 공백 및 병원 운영의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손현주의 관록 넘치는 연기는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을 훌륭하게 증명해 냈다.
오상범 수술 후 적출된 이물질(총알 파편 및 뼛조각)과 수술 강행 배경을 냉철하게 간파하면서도,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 속에서 기자회견을 침착하게 이끌어내는 병원장으로서의 노련함은 극의 긴장감을 완벽하게 조율했다. 방송 말미, 부승권은 계수정의 뛰어난 수술 실력을 목격한 후 장희숙(이정은 분)을 찾아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같은 비극을 공유하며 계수정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온 의사용역소개소 소장 장희숙에게 과거 ‘닥터X’와의 연관성을 직접 물으며 정체 추적에 나선 것이다. 김지원의 거침없는 직진 행보와 손현주의 날카로운 의심이 정면으로 맞물리며 향후 전개될 거대한 서사적 폭발력을 예고했다.
이러한 ‘닥터X’의 도전은 원작을 넘어 ‘K-메디컬 누아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TV아사히의 장수 원작 시리즈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가 경쾌하고 만화적인 옴니버스 오락물에 가까웠다면, 한국판은 역사적 트라우마부터 수술실 CCTV 의무화, 의료 파업이라는 중차대한 사회적 현실을 촘촘히 엮어내며 묵직한 서사를 부여했다.
이 도전적 각색은 해외 시장에서의 찬사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 속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쇼 부문에서 시청 시간 3670만 뷰를 기록하며 전체 2위에 올랐다. 글로벌 영화·드라마 정보 사이트 IMDb에서는 평점 7.9점을 기록 중이며,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단순한 의학 드라마를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실 부조리를 촘촘하게 엮어낸 웰메이드 스릴러”, “김지원의 절제된 카리스마와 손현주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이 압권”, “‘눈물의 여왕’ 이후 김지원 여왕이 돌아왔다”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닥터X’를 둘러싼 정치색 논란과 수많은 외부의 소음을 잠재운 것은 결국 작품이 지니고 있는 묵직한 시대적 질문과 주연 배우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연기 내공이었다. 자극적인 좌표 찍기와 거센 비난의 외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뚝심 있게 수술대를 지키는 김지원과, 그 뒤편에서 미스터리한 중량감으로 서사의 균형을 떠받치는 손현주의 완벽한 조화는 이 드라마가 왜 시청률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밖에 없는지를 입증한다.
이념과 갈등의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시대의 부조리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는 ‘닥터X’. 주연 배우 김지원의 독보적인 연기적 성장과 손현주라는 거대한 닻이 만난 이 드라마의 향후 항해에 온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