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원정은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2박 3일이다.
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자축구 A매치 남북 대결이었다. 월드컵 예선 경기는 처음이었다. 의미 있는 대결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도 주목했다.
그렇지만 즐거운 기억은 없다. 혈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이기러 떠난 평양길이었으나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였다.
욕설을 퍼붓는 건 기본이었다. 북한 선수들은 상당히 거칠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예민했다. 팔꿈치를 과하게 쓰며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것은 투지가 아니었다.
17일 새벽 귀국한 손흥민은 “승점 3을 못 땄다. 우리 경기력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100%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어느 정도 몸싸움은 이해하겠는데 북한 선수들이 (다른 경기보다 더) 너무 예민하고 거칠었다”라고 밝혔다.
과열된 경기에 양 팀 선수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이에 주심은 경고를 네 장이나 꺼내면서 자주 경기를 중단시켰다.
손흥민은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직접 부딪힐 상황이 별로 없어 북한의 전력을 말하기도 어렵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부상 위험이 너무 컸다. 축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다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을 정도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심한 욕설을 많이 받았다. (어떤 욕설이었는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벤투호는 14일 오후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 순안공항에 입국해 15일 북한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0-0 무)을 치렀다. 그리고 16일 오후 평양을 떠났다.
2박 3일간 평양에 머물렀으나 태극전사는 경기장과 호텔 안에만 있었다. 외출은 불가능했다. 경기장 이동 외에는 호텔 정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손흥민은 “어느 원정경기나 비슷하다. 그래도 예민한 상황이었다. 선수들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였다. 경기 하루 전날 평양에 도착한 만큼 최대한 컨디션 관리에 신경 썼다. 호텔에서 잠을 많이 잤다. 개인적으로는 (푹 쉴 수 있어) 좋았다”라고 전했다.
평양에서 남자축구 A매치 남북 대결이 펼쳐진 건 1990년 이후 29년 만이다. 손흥민(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번 남북 대결의 특이한 점은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는 것이다. FIFA와 AFC의 징계를 받은 게 아니다. 무관중 경기는 FIFA와 AFC도 인지하지 못했다. 9월 5일 북한-레바논전에는 4만명이 운집했다. 킥오프 전까지만 해도 일방적인 북한 관중의 응원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다.
손흥민은 무관중 경기에 대해 “상대가 우리를 ‘강팀’이라고 인식한다고 느꼈다. 북한이 졌을 때 피해가 상당히 클 테니까. 다만 그 부분을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 (잘 안 됐지만)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이야기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의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된다. 2020년 6월 4일에는 서울(유력)에서 남북 대결이 펼쳐진다.
손흥민은 “(다음 북한전에는)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하는 게 가장 큰 ‘대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rok1954@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