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의식의 균열에서 눈을 뜨다 [MK★인터뷰]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세상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 잣대를 들이밀고 그것은 때때로 또 다른 형태로 바뀌어 차별을 생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모른 체 넘기기보다 조금 낯설어고 불편해도 반드시 두 눈으로 응시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편 ‘자유연기’(2018)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도영 감독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난 김지영이 일상 곳곳에서 차별과 편견에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남주 작가가 집필해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배우 정유미가 김지영을, 공유가 지영의 남편 대현을 맡아 호연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는 순탄치 않았다. 원작은 젠더 갈등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영화화 반대 청원글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이 영화가 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대견하다. 김도영 감독은 원작이 품고 있는 서사의 가치를 믿고 뚝심 있게 연출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제시했다. 온갖 차별과 편견 속에서 태어난 ‘82년생 김지영’은 모진 암초를 딛고 순항 중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하 김도영 감독과 일문일답. - 개봉 5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스코어는 하늘에 맡기는 거라지만 첫 장편영화라 남다르다. 무대인사를 다니며 관객들의 반응을 곧바로 마주하니 좋더라. 원작이 지닌 상징에 맞는 무게감, 날카로움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컸고, 고민도 굉장히 많았다. 많은 분들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는 반응이 가장 기쁘다.

- 원작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감상이 궁금하다. ‘띵’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단단한 의식에 균열이 생기고 쪼개져서 눈을 뜨는 기분이 들었다. 내 삶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내가 속했던 풍경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책이 가진 문체 자체가 담담하고 건조해서 오히려 더 마음속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는 원작의 결처럼 담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흥분시키기보다 보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빙의라는 문학적 장치가 있는데, 자기 언어를 잃은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게 이 영화다. 그리고 그걸 완성하기 위해 단지 남편, 아버지가 아니라 사회 구조, 우리가 몸담은 풍경이 담겨야 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야기는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보다는 나를 거쳐 갔다는 생각이 들고 이 서사가 자신의 가치대로 잘 나아갈 거라 믿는다.

- 원작에 등장하는 빙의를 영화적으로 녹이는 데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원작에서 가장 재미있게 후킹이 된 장면이다. 소설에서는 지영의 남편이 바로 그를 정신과에 데려가는데 영화는 절반 이상을 지영이 정신과를 가기까지의 과정으로 소요한다. 영화라고 해서 빙의가 호러나 오컬트처럼 들어가선 안 됐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남주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해서 팟캐스트 출연분을 들어봤는데 식초에 담긴 오이 이야기를 하셨더라. 아무리 싱싱하고 훌륭한 오이라고 해도 식초에 담긴 이상 절여져서 피클이 된다는 거다. 어디에 담겨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공격적이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어떤 풍경에 놓였는가가 더 중요했다.

- 영화 속 몇몇은 화를 돋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대놓고 악역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없다. 지영과 주변 인물들 간 균형을 잡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시선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의제를 넣고 싶었기에 인물들의 배치가 중요했다. 지영을 감싸주는 주변 인물들은 평범하고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그를 도우려 하고, 지영은 그런 인물들 안에서 고립감을 느낀다. 주변 인물들이 나쁜 게 아니라 가부장 문화의 관습 속에서 살아 왔기에 일종의 틀을 지닌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지영과 엄마 미숙(김미경 분)이 만나면 서사가 더 풍성해진다. 결국 두 모녀의 서사가 지영과 딸의 이야기로까지 확장되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영과 미숙이 함께 하는 장면은 내가 썼다. 참 많은 게 들어오는 장면이다. 외할머니가 미숙을 위로하고, 미숙은 딸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복잡한 감정이 충돌하는 씬이다. 내가 별로 신파 취향이 아니라서 음악은 최대한 뒤로 뺐다. 사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너무 긴장했다. 그런데 김미경 선배님과 정유미 배우의 합이 딱 맞아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영화 후반부 지영이 자신을 ‘맘충’이라 표현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드디어 잃었던 말을 찾는 씬인 만큼 중요한 지점이고, 또 그 순간 지영의 뒤로 벚꽃나무가 잡히는데 이 또한 의도한 건가. 그 씬은 서사상 클라이맥스다. 감정적으로 높은 위치라 고민이 많았다. 만약 우리가 말을 잃었다가 내뱉은 첫 마디가 유려하거나 멋지면 너무 판타지 같지 않을까. 엉망이더라도 자기 말을 하는 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멋지지 않더라도 자기 말을 하는 순간을 모두가 맞이했으면 좋겠다. 벚꽃은 그 카페에 실제로 놓여있던 조화다. 꽃이 잡히는 게 좋을지 아닐지 엄청 고민했는데 정유미 배우의 액팅이 가장 좋은 테이크를 사용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벚꽃이 잡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편집이 굉장히 간결하다. 인물의 감정을 다음 씬까지 끌고 가기보다 칼 같이 자르는 느낌도 들었다.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질척거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툭툭 밀고 가는 힘이 있기를 바랐다. 툭 끊고 탁 넘어가는 식이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지만 편집으로 툭툭 밀어주는 느낌, 그리고 그 지점에서 리듬이 생겨난다. 그런 부분이 좋았다. 편집과 음악 등 후반 작업은 최대한 뒤로 빠졌던 것 같다. 나로서는 후반 작업을 통해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정유미, 공유와 작업은 어땠나. 정유미 배우의 연기를 볼 때마다 감탄했다. 나 역시 연기를 오래 했고, 많은 배우를 봐왔는데 정유미 배우는 붉은 물감을 풀면 붉어지고 파란 물감을 풀면 파랗게 된다. 타고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예상하는 정도를 약간씩 뛰어넘고, 빛을 발한다. 공유 배우는 주어진 배역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극 중 지영이 대학 선배로 빙의할 때, 시나리오에는 대현이 운다는 게 전혀 없는데 공유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 대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득력을 높였다. 이번 영화는 두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작업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영화 현장에서 생기는 여러 차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성 감독으로서 몸담고 있는 현장은 어떤 느낌인가. ‘82년생 김지영’은 조용한 스태프들과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내가 모르는, 그 안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을 수 있지만 나로서는 첫 상업영화이기도 했고 스태프, 배우들 간 서로 조심하며 촬영했다. 우리 현장이 조심스러운 현장이었다고 해서 다른 영화 현장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환기가 되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 감독 혹은 한 인간으로서 김도영이 지향하는 곳에는 무엇이 있나. 나도 지영이처럼 나의 말을 하고 싶다. 좀 서툴지만 반드시 나의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감독이 되면 좋겠다. 어떤 장르에 담긴다고 하더라도 나의 말을 해야겠다. ‘82년생 김지영’ 무대인사도 다 돌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또 올라올 거다. 그러면 그때 지영이처럼 잘 쓰도록 하겠다. /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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