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영화계는 여러 의미에서 뜻깊은 한해였다. 프랑스에서 전해진 낭보와 여성 및 신인감독의 약진이 돋보였고 천만영화가 다섯 편이나 탄생했다. 물론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어김없이 대두됐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된 해다. 1919년 10월27일 서울 종로구 단성사에서 개봉한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내려온다. 그리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라는 영화를 품에 안았고 여러 의미에서 약진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변화가 눈에 띄었던 올해 한국영화계를 되돌아본다.
◇ 천만영화 다섯 편 탄생, 양극화 현상과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여전
영화 ‘극한직업’ ‘기생충’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올해는 ‘기생충’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탄생했다. 한 해 동안 천만영화 다섯 편이 나온 건 올해가 최초다. 지난 1월 개봉한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은 1626만 명, 4월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은 1393만 명, 5월 개봉한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은 1255만 명, ‘기생충’은 1008만 명을 동원했다. 지난달 말 개봉해 현재까지 순항 중인 ‘겨울왕국2’(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는 27일 기준 1302만 명이 관람했다. ‘겨울왕국2’를 제외하면 천만영화는 거의 상반기에 몰려있다시피 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올해 여름대전이나 추석대전이 펼쳐진 극장가가 너무도 고요했기 때문. 극장가 특수를 노리는 텐트폴 영화가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의외의 복병은 있었다. 지난 7월 개봉한 ‘엑시트’(감독 이상근)가 바로 그 복병이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여름대전에서 942만 명을 웃도는 성과를 낸 것. 동시기 개봉작에 비해 월등히 앞서며 장기 흥행에도 성공했다. 기존 재난물과 달리 현실감 넘치는 설정과 소시민 캐릭터로 공감대를 높이고, 웃음 코드를 저격한 게 영화의 강점으로 점쳐졌다. 가족 단위 관객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영화라는 점도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다섯 편의 첫만영화가 탄생이라는 명(明) 이면에는 양극화라는 암(暗)도 존재한다. 다섯 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 두 편은 CJ엔터테인먼트, 외화 세 편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가 배급을 맡았다. 두 곳 다 대형 배급사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올해 가장 먼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재점화 한 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다. 개봉 첫날 전국 2760개 스크린에서 1만2545회 상영됐으며 상영점유율은 80.9%, 좌석점유율은 85%였다. ‘겨울왕국2’도 스크린을 독점했다. 상영점유율은 73.9%, 좌석점유율은 79.4%를 기록했고 결국 한 시민단체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국내 상영관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영화계 역시 ‘겨울왕국2’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기생충’이나 현재 상영 중인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도 스크린 독과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 프랑스 칸에서 전해진 낭보,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영화 최초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에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을 통해 제72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 주인공으로 호명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당시 봉 감독은 “저는 그냥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린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만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벅찬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처음 초청된 바다. 이후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리고 ‘기생충’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은 이후 9년 만의 쾌거다.
김도영 감독, 이옥섭 감독, 김보라 감독 사진=옥영화, 천정환 기자
◇ 여성 감독들의 약진, 독립과 상업 영화의 구분 없었다 올해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독립·예술영화는 물론이고 상업영화에서도 여성 감독들이 약진을 보였다. 지난 8월 개봉한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통틀어 무려 35관왕을 차지했다. 이미 국내 개봉에 앞서 25관왕을 거머쥔 바 있는 ‘벌새’는 개봉 이후 일종의 신드롬으로 자리하며 오래도록 관객과 만났다.
‘우리들’로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한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도 평단과 관객 모두에 호평 받으며 선전했고, 단편영화를 통해 뚜렷한 연출 스타일을 내보인 이옥섭 감독의 ‘메기’도 개성 넘치는 영화로 사랑받았다.
배우로 활동한 바 있는 김도영 감독의 장편데뷔작 ‘82년생 김지영’도 빼놓을 수 없다.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았지만,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 저력을 입증했다. 그밖에도 김한결 감독의 ‘가장 보통의 연애’, 박누리 감독의 ‘돈’, 이종언 감독의 ‘생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발휘한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