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겉멋’에 취해 드라마의 본질인 ‘기본’을 망각했다. 구멍 난 서사를 시각적 허세로 메우려다 보니, 흔들리는 설정 위에서 갈 길을 잃은 배우들의 연기는 불협화음만 가득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 말 그대로,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설득력을 잃은 채 ‘총체적 난국’이라는 늪에 빠졌다.
아이유와 변우석의 만남,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박준화 감독의 연출, 여기에 MBC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까지. 방송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21세기 대군부인’은 성적표만 놓고 본다면 명실상부한 ‘성공작’임은 분명하다.
‘2026년 최고 기대작’이라는 수식어를 입증하듯 지난 10일 시청률 7.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포문을 연 드라마는 상승 곡선을 그리며 4회 만에 11.1%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두 자릿수 고지에 안착하며 한동안 침체됐던 MBC 드라마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화제성 또한 핫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FUNdex) 조사 결과, 4월 2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1위를 차지했으며 점유율은 무려 90%를 상회한다. 출연진 화제성 또한 주연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이 2주 연속 나란히 1, 2위를 수성하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하지만 화려한 지표 이면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첫 방송 직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은 물론, ‘판타지’라는 방패 뒤에 숨은 작위적이고 허술한 설정들은 도마 위에 올랐으며, 역사적 개연성마저 상실한 전개는 시청자들 사이의 치열한 갑론을박으로 번지는 등 드라마를 향한 잡음이 내부에서부터 거세게 일고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서사의 부재다. 대한민국의 입헌군주제라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여러 고증 오류와 설정 충돌은 ‘드라마적 허용’이라며 흐린 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안을 채우는 이야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21세기 대군부인’ 속 모든 걸 가진 재벌이지만 신분이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 성희주(아이유 분)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슬픈 남자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로맨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급전개로 이뤄진다. 아무리 두 사람 사이 고등학교 시절 선후배로 만났던 인연이 있다고는 하나, ‘연애결혼을 하고 싶다’던 이안대군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희주를 사랑하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관계의 변화가 급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로맨스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며, 그러다 보니 꽃비가 내리는 담장 위 이뤄진 ‘담벼락 키스’는 아름다운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뭐 하세요?”라는 성희주의 대사가 더 와닿을 지경이다.
사건 간의 인과관계가 결여된 자리에 보여주기식 연출만 남았다는 점이 뼈아프다. 향후 관계의 복선을 암시한 이안대군과 국무총리 민정우(노상현 분)의 체스 신은 영상미 측면에서 호평받았으나, 한국 왕실이라는 배경에서 바둑이나 장기 대신 체스를 선택한 설정은 이질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여기에 아무리 가상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왕실의 의전차량이 외제차라는 점 또한 비주얼만 생각하고, 디테일을 놓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4회 말미,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을 몸으로 막아 세운 이안대군의 등장은 개연성 없는 클리셰의 나열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을 구한 이안대군의 등장은 멋있었으나, 피 흘리는 모습이 작위적이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배우의 눈빛마저 텅 비어 있다 보니 해당 장면은 진정한 ‘구원 엔딩’이라기 보다는, 그저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초공사가 부실한 대본 위에서 배우들 역시 갈 길을 잃었다. 각 인물 속 들어 있을 솔직한 욕망을 숨기고, 멋있는 부분만 남기다 보니 주인공들의 서사에 쉽게 몰입하기 어렵기만 하다. 배우들은 배역에 녹아들기보다 매 장면 ‘연기를 위한 연기’에 급급하며, 극의 전체적인 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각자의 해석은 몰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성희주 역의 아이유는 과장된 표현이 두드러지고, 이안대군 역의 변우석은 단조로운 표정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노상현과 공승연이 안정적인 연기로 고군분투 중이나, 한 드라마 속 각자 다른 장르의 연기가 펼쳐지다 보니, 결국 드라마는 하나로 묶이지 못한 채 갈 길을 잃은 것마냥 갈팡질팡 할 뿐이다. 결국 진지한 대목에서조차 설득력 없는 표정과 겉도는 감정선이 흐름을 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이라는 성적표는 분명 달콤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붙들게 하는 힘은 결국 탄탄한 대본과 서사, 설득력 있는 연기에서 나온다.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겉치레가 아닌 내실이다.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드라마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성패는 이제 남은 회차에 달려 있다. 껍데기만 화려한 잔치는 결국 공허함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금빛나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