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그랜트 파크. K팝 여성 솔로 최초로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헤드라이너 무대에 오른 제니의 행보는 분명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발자취였다.
찰리 XCX, 로르드 등 세계적 팝스타들과 나란히 버드 라이트 스테이지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그 자체로 높아진 K팝의 위상을 방증한다.
하지만 1시간여의 공연이 끝난 뒤, 현지와 외신의 평가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극명하게 오갔다. 그룹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벗어난 솔로 아티스트 제니가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는 몹시 무거웠다.
무대의 시각적 연출과 후반부의 몰입도는 확실한 쾌감을 선사했다. 앤 드뮐미스터의 레더 재킷과 엔지니어 부츠로 완성한 여전사 스타일링은 시대의 아이콘다운 강렬함을 뿜어냈다. 라이브 밴드 사운드에 맞춰 총 18곡의 세트리스트를 소화한 제니는 후반부로 갈수록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글로벌 히트곡 ‘Mantra’부터 ‘ExtraL’, 대미를 장식한 ‘like JENNIE’로 이어진 피날레는 현지 매체 시카고 선타임스로부터 “롤라팔루자 헤드라이너 선정의 이유를 증명했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롤링스톤 필리핀 역시 솔로 아티스트로서 무대를 통제하는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Dracula’ 무대가 남긴 믹싱의 불균형과 냉혹한 평가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라이브 퍼포먼스의 구조적 결함은 외신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큰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테임 임팔라(Tame Impala)와 협업한 ‘Dracula’ 무대였다. 케빈 파커가 불참한 가운데 기녹음된 백트랙 사운드에 전적으로 의존한 이 무대는, 현장 보컬과 디지털 소스가 겉도는 믹싱 불균형을 낳았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이를 두고 “화려하게 포장된 노래방(glorified karaoke)에 불과했다”며 뼈아픈 일침을 가했다.
수만 명의 관객을 라이브로 설득해야 할 헤드라이너가 음원 재생 수준의 가창에 머물렀다는 지적은, 대형 페스티벌에 걸맞은 오디오 제어 능력과 밴드 라이브 디렉팅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다. 무대 초반 쏟아져 나온 거대한 연출 장비와 수많은 댄서 군단 역시 아티스트의 생생한 목소리를 지원하기보다 주연의 존재감을 가리는 역효과를 냈다.
페스티벌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온전히 제어하지 못한 세트리스트의 구성도 아쉬움을 남겼다. 제니는 이날 ‘Heaven’, ‘Rock It Down’, ‘Sweet Tooth’, ‘Fallen Angel’ 등 정식 발매되지 않은 미공개곡 4곡을 연속으로 배치하는 음악적 모험을 시도했다.
자신만의 독자적 음악 세계를 증명하려는 주체성은 돋보였으나, 즉각적인 호흡을 원하는 현지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시간으로 다가왔다.
결과적으로 이 구간에서 공연의 흐름이 다소 정체되었고, 동시간대 반대편 메인 무대에서 열린 올리비아 딘(Olivia Dean)의 공연으로 발길을 돌리는 관객들의 흐름이 포착되기도 했다. 여기에 앞선 순서였던 에델 케인(Ethel Cain) 무대 도중 일부 팬덤이 펜스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무질서한 행동들이 현지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공연의 품격에 불필요한 잡음을 남겼다.
홀로서기의 진통, 진짜 서사는 지금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의 이번 롤라팔루자 무대를 단편적인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기존 K팝 아이돌이 밟아온 안정적인 프로모션 공식을 깨고, 서구권 주류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직접 부딪치며 영역을 개척하는 행보는 그 자체로 진일보한 시도다.
결국 이번 무대가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화려한 연출과 댄서들의 군무라는 방어막을 거둬내고, 오롯이 아티스트 개인의 보컬 역량과 묵직한 내공만으로 거대한 야외 무대의 공간감을 채워내는 것. ‘글로벌 아이돌’에서 ‘독보적인 디바’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통이다. 시카고의 그랜트 파크에서 마주한 서늘한 혹평과 뜨거운 환호는, 솔로 아티스트 제니가 써 내려갈 제2막의 가장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