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대호 노리나?”…단아함 찢고 ‘욕망 고모’ 된 KBS 아나운서들의 속내 [홍동희 시선]

대한민국의 아침을 무려 34년째 열어젖힌 KBS 1TV ‘아침마당’이 최근 방송 1만 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공영방송의 가장 보수적이고 엄숙한 성역이라 불리던 이 공간에 최근 아주 묘하고 흥미로운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아침 방송의 정갈한 정장을 벗어 던진 아나운서들이 유튜브 골목길로 내려와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대중과 눈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다. 공영방송 KBS가 선택한 ‘권위’라는 무거운 자산을 내려놓고 친근함으로 승부를 보려는 눈물겨운 생존 투쟁이다.

박철규 아나운서와 엄지인 아나운서. 사진=KBS
박철규 아나운서와 엄지인 아나운서. 사진=KBS

그 균열의 최전선에는 KBS 유튜브 채널 ‘여의도 육퇴클럽’의 코너 ‘영자의 전성시대’가 있다. ‘우리말 겨루기’의 깐깐한 수호자이자 첫 여성 스포츠팀장으로 후배들에게 ‘엄격한 멘토’로 통하던 엄지인 아나운서가 66년생 말띠 ‘욕망 고모 엄영자’로 변신해 파격적인 망가짐을 자처한다.

여기에 호흡을 맞춘 이가 1991년생 막내급 박철규 아나운서다. ‘아침마당’과 동갑내기임을 내세워 최연소 남자 MC 자리를 꿰찬 이 엘리트 앵커는, 여기서는 트로트 가수 신유가 만든 곡 ‘일등이야’를 목청껏 부르는 ‘가나운서(가수+아나운서)’ 페르소나를 입었다. 과거 ‘미스터트롯’에 도전했다가 통편집당했던 실제 아픔까지 콘텐츠의 훌륭한 스토리텔링 땔감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사진=KBS ‘여의도 육퇴클럽’ 유튜브 채널 캡처
사진=KBS ‘여의도 육퇴클럽’ 유튜브 채널 캡처

재미있는 대목은 이들의 세계관 속에 녹아 있는 미묘한 긴장감이다. KBS라는 거대 조직이 아나운서의 트로트 가수 데뷔를 순순히 허락해 주지 않자, 이들이 ‘디지털 탈출구’인 유튜브로 우회했다는 설정은 꽤나 현실적이면서도 웃기다. ‘엄격한 본사의 규제’와 ‘유튜브라는 해방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이 구도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공영방송이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파격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사실 이들의 파격은 대중을 가르치려 들던 레거시 미디어의 고압적인 태도를 완전히 내려놓은 KBS의 영리한 생존 전략이다. 이 콘텐츠가 송출되는 ‘여의도 육퇴클럽’이 실은 ‘KBS 저출생위기대응방송단 디지털팀’이 공들여 구축한 디지털 전진기지라는 점을 아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사진=KBS
사진=KBS

그동안 공영방송의 공익 캠페인이 “결혼하십시오, 아이를 낳으십시오”라는 훈계조였다면, 이들은 완전히 힘을 뺐다. 배우 고아성이 출연해 2030 여성들의 날것의 고민을 나누는 ‘도시여자대피소’나, 싱글맘과 성소수자의 실제 육아 현장을 보여주는 ‘이웃집 가족들’처럼 철저히 대중의 눈높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침마당 진행자들의 트로트 도전기 역시 이러한 ‘무공해 공감’을 무기 삼아 공익을 전달하려는 세련된 변칙 플레이인 셈이다.

하지만 경계를 허무는 혁신 뒤에는 아슬아슬한 이중성이 도사린다. 수십 년간 ‘품격’과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지탱해 온 아나운서라는 직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단아한 우리말을 전파하던 엄지인 아나운서가 ‘욕망 고모’로 뛰어다니고, 생방송 뉴스 데스크를 지망하던 박철규 아나운서가 마당쇠를 자처하며 코믹한 댄스를 출 때 대중적 친근감은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경계 파괴가 일상화된 이후, 이들이 다시 정갈한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룸에 앉았을 때 과연 그 정보와 멘트의 무게감이 예전과 같을 수 있을까. ‘엘리트 아나운서’가 웹 예능의 편리한 소모품처럼 느껴질 때 생기는 정체성의 균열은 아나운서 직군 전체의 ‘직장인화’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사진=KBS
사진=KBS

무엇보다 화려한 유튜브 조회수 장막을 슬쩍 걷어냈을 때 마주하는 것은 ‘K-직장인 아나운서’가 짊어진 가혹한 보상 체계의 잔혹사다. 신인가수 철규가 외치는 “최저 출연료라도 가겠다”는 유쾌한 슬로건 이면에는 직장인들의 지독한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사내 규정에 묶인 아나운서들은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몸을 불살라도 사내 규정상 시간당 최대 4만 원 선의 서글픈 출연료만 받는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비싼 몸값의 외부 연예인을 쓰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말 잘하고 훈련된 최고의 ‘가성비 극대화 대체재’를 확보한 셈이다.

이 서글픈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판을 깨뜨린 인물이 바로 MBC 출신의 김대호 아나운서다. 온갖 예능에서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하다 결국 프리랜서를 선언한 그는 “MBC 퇴사 후 반년 만에 재직 당시 연봉 1억 원만큼을 벌었고, 일이 10배 늘어난 대신 수입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고백했다.

직장 내부의 헌신과 시장이 매기는 객관적인 몸값 사이의 엄청난 괴리는, 결국 현재 아나운서들의 ‘유튜브 눈물 쇼’가 조직을 위한 헌신인 동시에 개인에게는 ‘프리 선언(탈출)’을 위한 인지도 구축용 징검다리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KBS의 디지털 도전과 아나운서들의 유쾌한 반란은 분명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반란이 일회성 쇼에 그치지 않고 진짜 ‘미디어 혁신’이 되려면 사람을 소모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아나운서들의 빛나는 재능과 헌신을 단순히 ‘가성비 좋은 땔감’으로만 쓰지 말고, 이들의 기여도에 부합하는 현실적인 보상 체계와 장기적인 동반 성장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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