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는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진다. 하지만 긴 무명 생활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자신만의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별은 결코 흔치 않다.
2006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 경기도 광주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소녀는, 2009년 ‘딱! 한번’으로 정식 데뷔한 이후 무려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리고 최근 MBN ‘현역가왕’에서 최종 5위에 오르며 대한민국 트로트계에 없어서는 안 될 독보적인 디바, 이른바 ‘트로트 핵진주’로 우뚝 섰다.
최근, 쉴 틈 없는 스케줄 속에서도 빛나는 미소를 잃지 않는 가수 박혜신을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 그리고 무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혜신은 얼마 전까지 안산,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투어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여자 솔로 가수가 2,000석 규모의 대극장을 홀로 채운다는 것은 가요계에서 결코 쉽지 않은 도전. 공연의 성과를 묻자, 화려한 무대 위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진솔하고 여린 속내가 터져 나왔다.
“거의 한 2천 석 가까이를 관객분들이 꽉 채울 정도로 정말 꽉 채운 무대를 이어왔는데, 사실 무대 저는 게스트 없이 혼자 2시간 20분가량을 혼자 무대를 진행했어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사실 긴장도 굉장히 많이 하고, 리프트를 타고 지금 올라가는 순간 꽉 찬 관객을 보면 정말 많이 뭉클하고 감사해요. 지금까지 또 무명 시절을 겪으면서 또 그간 아픔이나 고생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막 지나가죠. 그래서 더 노래에 집중할 수 있지 않나, 그 무대 한 곡 한 곡에 집중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박혜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심장을 파고드는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고 치과 의사를 꿈꾸기도 했던 평범한 중저음의 소녀는, 오직 ‘노력’이라는 끌과 정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조각해 냈다.
“원래 목소리가 좀 중저음이었어요. 제가 좋아했던 보이스들이 약간 허스키한 보이스를 굉장히 개인적으로 좋아했어요. 인순이 선배님, 이은하 선배님 또 루더 밴드로스... 나도 저런 목소리를 갖고 싶어 하다 보니 그때도 연습을 아마 하루에 한 10시간씩 했던 것 같아요. 조금 결절도 오고 그게 이제 반복적인 게 일어나면서 나중에는 좀 그게 허스키 보이스로 좀 된 거구나, 감사하게 생각하죠.”
하루 10시간의 피나는 연습. 결절을 앓으며 만들어낸 거친 음색은 그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이었는지를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나 실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이 아니었다. 방송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그는 마이크 대신 리포터 마이크를 잡고 전국을 누벼야 했다.
“그때 저 코너가 있었었어요. ‘박혜신의 대단한 도전’이라고. 영하 20도가 넘는 태백산 등반도 있었고 청바지 공장에서 청바지 물들이기, 유리 만들기... 확실히 열심히 하고 고생하니까 또 많은 분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박수도 많이 쳐 주시고 알아봐 주셨어요.” (웃음)
리포터로 고군분투하며 이름을 알리려 애썼던 이유는 단 하나, 무대에 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8년이라는 무명 생활 동안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닌, 관객의 냉담한 뒷모습이었다고 박혜신은 고백했다. 기자의 마음마저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경제적인 힒든 보다는 무명으로서 겪어야 될 그 아픔이 좀 컸던 것 같아요. 트로트 씬에서 갑자기 이제 팬덤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제 앞 뒤 무대에 굉장히 많은 팬덤을 몰고 다니는 가수분들이 무대에 섰을 때 (제가 나올 타이밍에) 갑자기 박수 소리가 확 줄어요. 아니면 갑자기 관객의 수가 확 줄어든다는 거. 일어서서 떠나시고... 그런 걸 많이 겪었죠.”
그러한 눈물겨운 시간을 견뎌냈기에, 최근 그를 스타덤에 올린 MBN ‘현역가왕’과 ‘한일가왕전’ 무대는 박혜신에게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한일가왕전’ 무대 뒤에는 방송에 나가지 않은 치열한 투혼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 제가 한일가왕전 할 때 정말 많이 아팠었거든요. 열이 나서... 그래서 그날 녹화 당일날 새벽에 제가 응급실 가서 진통제를 맞고 그걸로 이제 무대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아마 더 울림이 있지 않았나. 많이 아쉬웠고 마음이 아팠던 무대였던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기자가 느낀 박혜신은 무대 위에서 불을 뿜는 ‘여전사’라기보다는, 깊은 감수성을 지닌 섬세하고 눈물 많은 소녀에 가까웠다. 카메라가 꺼진 일상 속 박혜신은 어떤 사람일까.
“무대에서는 굉장한 E예요. 근데 이제 집에 가거나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I로 바뀌어요. 완전 바뀌어요. 팬분들 앞에서는 그냥 어린아이 같은 또 그런 부분이 있어서 팬분들이 보시기에는 제가 아기 같고, 눈물이 많은 저를 보시고 다른 모습을 보시면서 좋아해 주시지 않나... 내려오면 아무래도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내려오다 보니까 (조용해져요).”
요리와 뜨개질, 바느질을 즐기는 천상 여자. 반면 무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오직 대중을 위해 억눌러왔던 열정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행위 예술에 가깝다. 팬들은 까무잡잡하고 건강한 그의 피부와 폭발적인 성량을 빗대어 그를 ‘흑진주’를 넘어 ‘핵진주(핵폭탄급 강력한 무대)’라 부르며 열광한다.
어느덧 팬카페 ‘혜신누리’는 여느 대형 가수 부럽지 않은 탄탄한 화력을 자랑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지켜준 팬들을 향해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부탁에, 강인해 보이던 박혜신의 눈가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맺혔다.
“혜신누리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사랑이 저 혜신이에요. 항상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하면서 저를 응원해 주시고...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은혜 받겠습니다. 혜신누리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해요. 어디 가지 마세요.”
18년, 결코 짧지 않은 인고의 시간. 차가운 빈 객석을 향해 홀로 노래하던 무명 가수는 이제 2,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꽉 채우며 팬들과 눈을 맞추는 대한민국 최고의 ‘트롯 디바’가 되었다. 온몸을 불사르는 열정과 팬들을 향한 진심 어린 눈물이 존재하는 한, 트로트 ‘핵진주’ 박혜신이 써 내려갈 전성기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