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불암, ‘22년 아내’ 김혜자·‘39년 딸’ 김혜수·‘60년 절친’ 오지명의 마지막 인사

고(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 22년간 드라마 속 아내였던 김혜자, 39년간 딸처럼 지낸 김혜수, 60년 넘는 절친 오지명이 찾아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남겼다.

지난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불암의 빈소를 찾은 김혜자는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22년 동안 ‘전원일기’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동료를 떠나보내는 순간이었다.

김혜수가 무릎을 꿇고 조문객의 신발을 정리하며 고인의 아내 김민자를 챙겼다면, 이튿날 빈소를 찾은 오지명은 60년 넘게 함께한 친구에게 “내가 먼저 죽어야 되는데”라며 미안함을 전했다.

고(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 22년간 드라마 속 아내였던 김혜자, 39년간 딸처럼 지낸 김혜수, 60년 넘는 절친 오지명이 찾아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남겼다. / 사진= 공동취재단
고(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 22년간 드라마 속 아내였던 김혜자, 39년간 딸처럼 지낸 김혜수, 60년 넘는 절친 오지명이 찾아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남겼다. / 사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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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최불암과 쌓아온 시간은 서로 달랐지만, 빈소에서 남긴 말과 행동에는 오랜 인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혜자와 최불암의 첫 연기 인연은 1969년 MBC 드라마 ‘개구리 남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두 사람은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MBC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 회장과 아내 이은심으로 출연했다. 22년 동안 함께 밥상을 마주하고 자식들을 걱정하던 모습은 실제 부부로 오해받을 만큼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지난 2023년 9월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21년 만에 방송을 통해 재회한 김혜자는 최불암을 기다리며 설렜던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최불암 씨 만나니 설렜다. 옛 친구 만나는 것 같았다”며 함께한 세월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당시 최불암도 김혜자를 향해 “우리는 일생 친구”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대 시절부터 함께 연기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웃었다. 김혜자는 최불암에게 연기를 많이 배웠다고 했고, 최불암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야단친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혜자는 오랜만의 만남이 서먹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답했다.

그렇게 2023년에는 반가워서 눈물을 참았던 김혜자가 3년 뒤에는 최불암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죽으면 또 만날 거고, 마지막이라고 그러지 마”라며 고인과의 추억을 모두 기억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이어 “곧 만날 거예요. 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라고 덧붙였다.

조문을 마친 김혜자는 빈소에서 마주친 윤여정과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눴다.

김혜자가 다시 만나겠다는 말로 고인을 떠나보냈다면, 김혜수는 빈소에서 직접 조문객을 맞고 유족을 돌봤다.

지난 30일 유튜브 채널 ‘미디어몽구’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는 검은 옷차림의 김혜수가 조문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입구에 놓인 신발을 무릎을 꿇은 채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이 담겼다.

윤여정과 고두심 등 선배 배우들을 직접 배웅했고, 고두심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김혜수가 세심하게 챙긴 사람은 최불암의 실제 아내인 김민자였다. 김혜수는 김민자가 이동할 때 곁에서 부축하고 목도리를 직접 둘러줬다. 고인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는 모습은 가족처럼 가까웠던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줬다.

그 인연은 1987년 KBS 드라마 ‘사모곡’에서 시작됐다. 당시 김혜수는 김민자와 모녀로 출연했다. 신인이었던 김혜수는 대선배들과 함께하는 사극 촬영장에서 긴장했고, 김민자는 어린 후배를 딸처럼 보살폈다.

김혜수는 지난 2021년 KBS 1TV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에 출연해 당시 김민자가 자신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돼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불암과 김민자 부부를 두고 “저에게는 엄마 아빠 같은 존재”라며 자신을 자식처럼 따뜻하게 품어줬다고 밝혔다.

1987년에는 김민자가 어린 김혜수를 챙겼지만, 39년이 흐른 2026년에는 김혜수가 남편을 떠나보낸 김민자를 부축하고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세 사람은 꾸준히 식사를 함께하며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왔다.

2021년 1월 14일 방송된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김민자와 김혜수가 프로그램 10주년을 맞은 최불암을 위해 직접 밥상을 차렸다. 김혜수는 평소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최불암을 위해 수육을 준비했고, 김민자는 묵은지를 활용한 음식과 들기름미역죽을 만들었다.

김혜수가 마련한 선물도 있었다.배우와 가수, 방송인들이 보낸 축하 영상편지뿐 아니라 독일과 브라질,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영상도 모았다. 여기에 2010년과 당시 최불암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까지 준비했다.

그날 김혜수는 최불암에게 받은 문자메시지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선생님은 문자가 늘 시다”라며 고인에게 받은 메시지를 보고 또 본다고 말했다. 실제 최불암이 김혜수에게 보낸 문자에는 “다녀와 혜수가 꾼 꿈 얘기 듣자고!”라는 다정한 말도 담겨 있었다.

한 상의 밥을 차려드리고 문자 한 통까지 간직하던 딸은 5년 뒤 고인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으며 김민자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지난 31일에는 최불암과 60년 넘게 친구로 지낸 오지명이 빈소를 찾았다. 오지명은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 앞에서 고인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먼저 가니 아주 내가 괜히 미안하다. 내가 먼저 죽어야 되는데”라며 말을 이어갔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연기자가 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오지명은 중앙고등학교 시절에도 최불암과 친구였다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이름은 1960년대 연극 기록에도 함께 남아 있다. 1965년 9월 국립극단의 연극 ‘수선화’에서 오지명은 창식, 최불암은 김성환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1966년 1월 공연된 연극 ‘이순신’에서는 오지명이 이순신 장군을, 최불암이 이영남 장군을 연기했다.

연극 무대에서 함께했던 두 사람은 이후 방송계에도 진출했다. 오지명은 최불암과 함께 탤런트 시험을 치른 것이 아니라 PD의 발탁으로 나란히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인연은 영화로도 이어졌다. 2004년 오지명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까불지마’에서는 최불암과 노주현이 함께 출연했다. 당시 오지명은 최불암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불암이는 동갑이고 어려서부터 잘 안다”고 설명했다.

학교와 연극 무대, 방송과 영화까지 함께한 두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의 죽음을 농담으로 이야기할 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그 농담이 현실이 된 순간, 오지명은 친구의 영정 앞에서 웃을 수 없었다.

그는 생전에 주고받았던 말을 떠올렸다. “맨날 네가 먼저 죽냐, 내가 먼저 죽냐 그랬는데 자기가 먼저 가네.” 오지명은 먼저 떠난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늦게 살아서.”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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