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능란한 반전과 감동 코미디, ‘힘내리’ 이계벽 감독 [김노을의 디렉토리]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이계벽 감독의 영화는 모두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배반하는 코미디다. 여기에 감동 코드가 적당히 버무려져 관객들로 하여금 한 번쯤 쉬어갈 수 있는 그늘도 마련한다.

‘자극’은 비단 야하거나 어두운 영화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정성과 자극으로 범벅된 채 허둥지둥 억지 감동으로 마무리 짓는 코미디 영화를 숱하게 봐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계벽 감독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자극 없이도 충분히 좋은 코미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계벽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이계벽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 웃다보면 눈물 나는 ‘야수와 미녀’(2005) 이계벽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의 연출부를 거쳐 배우 류승범, 신민아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야수와 미녀’로 첫 장편영화를 선보여 말 그대로 관객을 웃고, 울렸다.

구동건(류승범 분)은 만화영화 ‘괴물’ 소리 전문 성우다. 그의 연인 장해주(신민아 분)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해주만을 위하는 동건은 자신의 외모를 궁금해 하는 해주에게 잘생긴 동창 탁준하(김강우 분)의 얼굴을 제 모습인 양 설명한다. 하지만 해주가 수술로 눈을 뜨게 되자 동건은 제 거짓말의 덫에 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해주에게 준하는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그리고 해주의 행복을 바라는 동건은 남몰래 하와이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영화 ‘야수와 미녀’ 포스터 사진=쇼박스
영화 ‘야수와 미녀’ 포스터 사진=쇼박스
‘야수와 미녀’는 멜로와 코미디가 적절하게 섞여 웃다가 울다가를 유발한다. 이계벽 감독은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 정반대로 설계했다. 대부분 로코물이 이성간의 첫 만남부터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간다면, ‘야수와 미녀는’ 초반에만 반짝 행복하다가 급격히 삐그덕거린다. 이 모든 불행은 동건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거짓말 때문이라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동건은 제 콤플렉스를 감추려 거짓말을 시작하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짓이 몸집을 부풀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다. 변명일수도 있지만 동건의 거짓말은 해주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연인을 위한 사소한 거짓말이 결국엔 모든 걸 잃게 하는 결정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동건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영화 ‘럭키’ 포스터 사진=쇼박스
영화 ‘럭키’ 포스터 사진=쇼박스
◇ ‘키’ 하나에 담긴 성인 성장담 ‘럭키’(2016) 가학과 코미디가 동의어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계벽 감독은 두 인물의 운명을 뒤바꾼 목욕탕 ‘키’ 하나에 성인들의 성장담을 녹여냈다.

‘럭키’는 이계벽 감독이 ‘야수와 미녀’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장편영화로 무명배우 재성(이준 분)과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 분)의 운명이 목욕탕에서 뒤바뀌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따지고 보면 ‘럭키’는 장르와 소재 모두 익숙하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우연한 사건 혹은 사고로 인해 운명이 뒤바뀐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뻔한 답을 본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리고 이런 영혼 체인지는 코미디 장르에서 무척 애정하는 소재다.

하지만 이계벽 감독은 이 흔한 소재를 택한 코미디 영화로 7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장르를 불문하는 흥행 아이콘 유해진과 시너지 효과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스토리의 의외성 역시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얼떨결에 타인의 삶을 살게 된 다 큰 어른들의 이야기는 매순간 의외였다. 예상을 빗겨가는 건 당연지사, 상상의 영역을 뛰어넘는 건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유머의 변주를 완성했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포스터 사진=NEW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포스터 사진=NEW
◇ 이번엔 미스터리 코미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데 능한 이계벽 감독이 ‘딸벼락’ 이야기를 그린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로 돌아왔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하루아침에 딸벼락을 맞은 철수(차승원 분)가 자신의 미스터리한 정체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반전 코미디다.

대복칼국수의 반전 미남 철수에게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딸 샛별(엄채영 분)이 찾아온다. 처음엔 낯설기 그지없는 상태에 놓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할수록 철수는 자신의 정체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동시에 성장한다.

이계벽 감독의 주특기 반전과 감동이 담긴 코미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는 모두가 놀랄 진짜 반전이 녹아있다. 이 반전은 철수에 대한 반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 일련의 일들로 씻지 못할 아픔을 느낀 사회 구성원들을 향한 위로의 반전이기도 하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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