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둑들. 시간의 길’ 절제로 빚어낸 감정의 밀도 [MK★BIFF 리뷰]

매경닷컴 MK스포츠(부산 우동)=김노을 기자

때로는 감정의 절제가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높이기도 한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차분한 시선을 견지해 미학적 성취를 이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카자흐스탄 출신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일본 출신 리사 타케바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했다. 특히나 예를란 감독은 3년 전 연출한 ‘호두나무’로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바 있어 영화제와 그 인연이 깊다.

일본 출신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가 카이랏,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아이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말 예슬라모바가 아내 역을 연기했다.

제24회 BIFF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포스터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24회 BIFF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포스터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는 말을 팔기 위해 읍내 장터로 향한다. 그는 어린 아들과 두 딸에게 선물할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말도둑들에게 살해당하고, 남자의 장례식을 치른 여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돌아가려 하지만 그때, 8년 전 말없이 떠났던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 여자의 이사를 돕는다. 그 남자와 어린 아들은 함께 말몰이에 나섰다가 말도둑들을 맞닥뜨리고 이들의 치열한 결투는 극의 스펙터클을 높인다. 영화는 시종 잔잔하다. 잔잔하다 못해 고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카자흐스탄의 너른 초원과 대자연을 응시하는데, 여기에는 절대 선을 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남자의 죽음, 말도둑들과 총성이 오가는 결투 등 감정의 수위가 높은 사건들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인물은 절대로 감정을 과잉하는 법이 없다. 이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라 인물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느 정도 선을 지켜 관찰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 같은 연출은 곧 여백의 미, 영상미로 이어진다.

제24회 BIFF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24회 BIFF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초원을 담기에 제격인 와이드 스크린과 황폐한듯하지만 생명력이 깃든 카자흐스탄의 자연은 인물들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인간들의 거친 싸움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자연은 아무런 소란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주인공인 남자와 아내 그리고 아들도 끝끝내 감정을 삼킨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의 엔딩은 가히 인상적이다. 잠에서 깬 어린 아들은 액자 속 그림인지 현실인지 모를 두 남녀를 응시하고, 아빠의 시계를 본다. 차분하고 고요한 공기는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한편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3일 오후 6시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6일 오후 8시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9일 오후 1시 30분 CGV센텀시티 7관에서 총 3차례 상영된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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