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1959년 일본 출생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뜻 어른보다 아동 위주 작품관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동용 소재의 외피를 두르고 현대 일본사회가 마주한, 더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찌르는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시선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예리하다.
영화 ‘버스데이 원더랜드’ 포스터 사진=ANIPLUS
◇ 자연과 아이의 시선으로 본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2007)
코이치는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강가에서 우연히 신기한 모양의 돌을 발견한다. 바로 이 돌에서 환상의 동물 혹은 요괴라 불리는 갓파가 깨어나고 코이치와 가족들은 그에게 쿠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식구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코이치 가족과 쿠는 신나는 여름을 보내던 중 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평온한 일상에도 균열이 생긴다. 자신을 한낱 화젯거리쯤으로 여기는 매스컴에 의해 쿠는 원치도 않는 유명세를 치르고 이 유명세는 금방 온갖 수모로 변모한다.
영화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포스터 사진=디스테이션
에도시대에 살던 쿠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2007년 도쿄에 도착한다. 쿠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이유는 하나,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잊은 채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고도의 경제성장 속 자연파괴는 곧 갓파들의 파괴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런 쿠를 깨운 건 한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에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건 인간의 편협함이다. 쿠는 인간의 형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건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보편 혹은 보통으로 규정되는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행위는 우리의 현실이다.
영화 ‘컬러풀’ 포스터 사진=영화 ‘컬러풀’
◇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찌른 ‘컬러풀’(2010)
‘컬러풀’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죽었지만 사후세계에서 천사인 듯한 프라프라를 만나 6개월의 유예기간을 얻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다. 단 유예기간 동안 전생의 죄를 기억해야만 환생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프라프라에게 환생의 조건을 듣고 눈을 뜨니 나는 고바야시 마코토가 되어 있다. 고바야시 마코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중학교 3학년생으로 무능력한 아버지와 춤선생과 바람난 엄마, 나를 경멸하는 형이 그의 가족이다. 학교생활도 녹록치 않았던 걸로 보인다. 성적은 최악인데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나는 전생의 죄를 기억해내야 하는 임무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마코토의 삶이 너무 벼랑 끝이라 그게 쉽지가 않다.
나는 프라프라의 도움으로 마코토의 인생을 살지만 유예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결국 환생은 고사하고 남은 하루하루를 즐기기로 마음먹은 그때, 나로 인해 마코토의 삶에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컬러풀’은 모리 에토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하라 케이이치가 연출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시선,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현대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이지메 문제, 가족 해체 현상 등 고질적인 문제들을 깊숙이 찌른다.
영화 ‘버스데이 원더랜드’ 스틸컷 사진=ANIPLUS
◇ 여전한 감성으로 그린 ‘버스데이 원더랜드’(2019)
하라 케이이치 감독이 자신만의 감성에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지난 24일 개봉한 ‘버스데이 원더랜드’는 생일을 하루 앞둔 아카네 앞에 갑자기 연금술사 히포크라테스와 제자 피포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히포크라테스와 피포는 평소 자신감이 없던 아카네를 자신들의 세계를 구해달라며 억지로 원더랜드에 데려간다. 그들의 세계 원더랜드는 아카네의 세상과 달리 행복의 색으로 가득하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아카네는 골동품 가게 지하실과 이어진 이 신기한 세계의 구세주가 되고,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제21회 부천국제애니페스티벌 초청작이자 김성일 수석 프로그래머의 추천작으로 한국 관객들과 미리 만나기도 했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