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일본 영화감독 후지이 미치히토는 낯선 이름이다. 2014년 장편데뷔작을 찍은 이후 십여 편에 이르는 장단편을 찍었지만 국내 관객들의 뇌리에 남을 만한 영화는 없었다.
그런 후지이 미치히토에게도 이름을 새길 만한 작품이 생겼다. 심은경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영화 ‘신문기자’가 바로 그것. 올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수작품상, 우수남우주연상, 우수여우주연상 등 3관왕에 오르며 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스펜스와 코미디를 섞은 입봉작부터 사회 모순을 지적하는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넓어진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사진=팝엔터테인먼트
◇ 서스펜스, 코미디, 휴먼드라마 다 있는 ‘오! 파더’(2014)
‘중력 피에로’ ‘골든 슬럼버’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오! 파더’가 후지이 미치히토의 입봉작이다.
고교생 유키오는 4명의 아버지와 기묘한 동거 중이다. 자신의 직감을 맹신하는 도박꾼 아버지, 전직 호스트인 꽃미남 아버지, 아들의 공부를 도맡는 대학교수 아버지, 격투기 마니아 아버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다행스럽게도 유키오는 아버지들의 장점만 쏙쏙 빼닮았다. 이 기묘한 동거생활에서 유키오와 4명의 아버지는 한 사건으로 인해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휩쓸려버린다.
영화 ‘오! 파더’ 포스터 사진=영화 ‘오! 파더’
유키오는 어느 도난 현장의 목격자가 되고 이로 인해 감금당하고 만다. 아버지들은 유키오의 감금을 계기로 아들을 구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이 과정에서 서스펜스와 코미디가 적절히 섞인다. 사건은 서스펜스, 해결 과정은 코미디, 결말은 감동의 전개를 따르는 일본식 휴먼 영화다.
‘오! 파더’는 설정부터가 흥미롭다. 달라도 너무 다른 4명의 중년 남성과 한 명의 고교생, 여기에 유키오의 여자친구를 자처하는 여고생까지 일본 영화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 구도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다양한 인물들의 불협 화음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화합을 만들고, 오직 유키오를 위한 마음만 남자 감동이라는 진짜 결과를 낳는다. 후지이 미치히토는 코미디 룰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서스펜스를 놓지 않는다. 사건만 던져 놓고 흐지부지 끝내는 어떤 영화들과 달리 서스펜스와 코미디, 감동을 한 궤에 놓고 훌륭히 연출해냈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사진=팝엔터테인먼트
◇ 일본의 후세를 염려한다 ‘신문기자’
후지이 미치히토의 필모그래피는 점점 짙어지고 묵직해진다. 초기작이 개인을 다뤘다면 현재는 공동체를 염려한다.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3개 트로피를 품에 안은 ‘신문기자’는 지난해 10월 17일 이미 국내 개봉했지만 이번 아카데미 수상에 힘입어 지난 11일 재개봉했다.
‘신문기자’는 아베 정권의 사학 비리를 캐내는 과정이다. 총리 직속 내각정보조사실은 국민들을 속이기 위한 가짜뉴스를 양산한다. 일본 정부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영화 전반에 깔리고, 진실을 찾으려는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 분)가 이를 추적하고 고발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미친 듯이 뜨겁고 열정적인 영화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신문기자’는 호흡이 매우 느리다.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지고 그 일들을 추적하는 기자의 시점을 담으면서도 영화는 템포를 쉽게 올리지 않아 별다른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핵심이 되는 사건을 놓치는 오류는 범하지 않는 것이 후지이 미치히토의 미덕이다.
‘신문기자’는 현대 일본 사회의 모순과 언론의 부조리를 가차 없이 지적한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 고발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과 집단 사이 발생한 갈등, 진실을 마주한 이의 선택 등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거대한 음모를 마주했을 때 응시할 것인가 시선을 떨굴 것인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면을 고찰하게 만든다. 자신의 다음에 올, 일본의 후세를 걱정하는 감독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