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감정을 지닌 한 인간의 서사를 배우 박훈이 모자름도 넘침도 없이 그려냈다. 순수와 잔혹이 공존하는 눈빛 하나로 ‘아무도 모른다’의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베테랑이다.
21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극본 김은향, 연출 이정흠)는 계에 선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던 어른들의 미스터리 감성 추적극으로 지난달 2일 첫 회 9%(닐슨코리아)를 시작으로 안정적인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며 시청자들의 꾸준한 애정 속 막을 내렸다.
박훈은 극중 한생명 재단 이사장, 밀레니엄 호텔 대표라는 직함을 가진 백상호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자수성가한 자산가에 걸맞게 여유와 날카로움을 한 번의 눈빛에 담아내며, 우아하면서도 잔혹한 인간의 양면성을 복합적으로 표현해냈다. 또 극 초반에는 자신이 어울리는 아이들처럼 순수한 탈을 쓰고 있다가도 서사가 진행될수록 잔혹무도한 어른의 민낯을 보이며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주축을 이뤘다.
배우 박훈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엄중한 시기에 드라마가 방송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시청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 그저 감사할 뿐이다. 또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도 모른다’가 사회비판적 기능보다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과 착한 어른, 나쁜 어른들의 역할에 질문하는 드라마라는 거다. 아이들 앞 어른의 역할에 모두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기 바란다.”
백상호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극중 그에게도 과거와 서사는 주어졌다. 과거의 백상호 역시 어른들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자리할 수 없었던 유약한 존재였고 오늘날 아이들과 그 경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의 완벽한 악역 백상호에 대해 박훈은 면죄부를 주지 않으면서도 복합적으로 표현하려는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범죄는 범죄고, 아픈 사연이 있어도 면죄부가 될 순 없다. 하지만 사연은 필요하다. 우리는 악을 섣불리 구분 짓는 경향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 드라마는 악과 선이 대립해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을 통해서 ‘저 아이가 혼자된 시점에 좋은 어른을 만났더라면’ ‘우리들은 당장 어떤 어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백)상호의 행위를 합리화하지 않았다. 다만 표현은 입체적으로 하려고 했다. 너무 악당으로 그리면 보는 재미를 반감시킬 뿐만 아니라 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아이처럼 표현한 거다.”
배우 박훈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아무도 모른다’의 백상호는 점차로 변화한다. 돌연 탈을 바꿔 쓰기보다 자연의 맹수처럼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느릿느릿 타깃에 접근해 자기 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아귀에 아이를 넣게 된 순간, 순수한 껍데기는 온데간데없이 잔혹한 어른만 남는다. 배우 입장에서 홀로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간다는 것에서 오는 고민은 없었을까.
“넷플릭스에서 ‘결혼 이야기’를 봤다. 스칼렛 요한슨(니콜 역)이 이혼 이야기를 하다가 과자를 먹으며 ‘맛있다’고 말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인간의 감정은 저런 거라고 느껴졌다. 배우들은 연기하다 보면 진지해야 할 것만 같은 함정에 빠진다. 계속 슬픈 느낌을 가져가야 한다는 함정에 빠진다. 그런데 ‘결혼 이야기’의 그 장면을 보면서 감정은 원초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백상호를 연기할 때도 이리 튈 수도 저리 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웠다.”
배우 박훈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박훈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기대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장르물의 확장이다. 감성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도 모른다’는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감성적 측면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측면이 한데모여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그리고 두 자릿수 시청률 돌파라는 결과가 긍정적 반응을 입증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봐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무도 모른다’가 어떤 장르물을 하시려는 분들에게 다른 의미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드라마 시장의 다양성이 생겨나지 않았나. 퀄리티가 높아져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우리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장르적 특성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았던 만큼 장르물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