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8일, 신월구장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서울권 명문’ 장충고가 봉황대기 1회전에서 한광 BC에 5대 7로 패한 것이다. 이날 장충고 에이스 권시우는 5.2이닝 8탈삼진 무자책으로 묵묵히 마운드를 지켰다. 팀은 패했지만, 권시우의 투구는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권시우는 뛰어난 신체 조건과 높은 완성도를 갖춘 투수다. 패스트볼 최고 149km/h에 다양한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특히 부드러운 투구폼과 변칙적인 무브먼트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율이 11.6에 이르는 ‘고교 야구’ 닥터 K. 장충고 신성우 감독은 “타자를 피해 가지 않고 부딪히는 싸움닭 스타일이다. KT 소형준이 떠오르는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장충고는 KBO리그 팬들에겐 익숙한 학교다. 최근 5년간 대졸 선수를 포함해 21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지난해엔 ‘특급 유망주’ 문서준이 계약금 150만 달러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올해, 또 한 명의 투수에게 그 시선이 향하고 있다. ‘투수 왕국’ 장충고의 새로운 후계자 권시우를 장충고 교정에서 만났다.
권시우가 투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강한 어깨를 눈여겨본 덕수중 공태웅 감독이 투수 전념을 권했다. 권시우는 “당시에는 투수와 야수 모두 자신이 없었다. 두 포지션을 병행하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지난해였다. 2학년 시즌 들어 구속이 10km/h 가까이 상승했다. 공식 경기에선 1이닝 투구에 그쳤지만, 추계 리그에서 최고 140km/h 중반대 패스트볼을 앞세운 호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성장의 비결은 끊임없는 반복 훈련이었다. 권시우는 “1학년 때는 구속도 떨어지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학년 한 해만큼은 정말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라며 “매일 밤 집 앞에 나가 휴대전화를 세워두고 섀도 피칭을 했다. 영상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3학년이 된 권시우는 장충고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무기로 성장했다. 시즌 첫 전국 대회였던 3월 이마트배에선 3경기 8.2이닝 동안 무려 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시즌 성적도 12경기 46이닝 평균자책 1.96으로 나쁘지 않다. 주축 투수로 손색없는 성적이다.
하지만 권시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즌 전 세웠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구속도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고, 경기 운영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어요.”
동계훈련 도중 당한 발목 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권시우는 “부상 여파가 생각보다 컸다. 그 이후로는 꾸역꾸역 던져왔는데 이제야 마운드에서 감각이 맞아가는 느낌”이라며 “지금까지는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라고 돌아봤다.
투수 권시우를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구위다. 권시우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49km/h. 수치상의 구속을 떠나 묵직함이 느껴진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특히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 타자들이 정타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평균 구속이 140km/h 초반대에서 형성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변화구 완성도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세 구종 모두 결정구로 활용할 수 있다. 올 시즌 9이닝당 11개가 넘는 삼진을 잡아낸 비결이다. 후반기 주말리그에선 100구 이상 투구수도 무리 없이 소화했다. 한 스카우트는 권시우를 두고 “뛰어난 피지컬과 안정적인 커맨드 능력을 갖춘 투수”라며 “변화구 구사 능력도 좋아 향후 선발 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신성우 감독은 권시우를 ‘싸움닭’에 비유했다. 투구 템포가 빠르고 타자들과 공격적인 승부를 즐긴다는 게 신 감독의 이야기다. 권시우는 “투 스트라이크 전까진 코너워크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그 이후 유인구를 던지거나 몸쪽 코스를 공략하는 편”이라고 자기 투구 지론을 설명했다.
가다듬어야 할 점도 있다. 신 감독은 “상황에 따라 템포를 조절할 줄 알면 더 좋은 투수가 될 것”이라며 “조금 더 여유 있게 플레이하면 좋겠다”라고 짚었다. 권시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반드시 수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못 박은 그다. “마운드에서 흥분하면 강하게만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은 위기일수록 경기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해요.”
장충고의 2026시즌은 아쉽게 막을 내렸다. 시즌 초 이마트배 32강에 그친 데 이어 황금사자기에선 1회전 탈락의 쓴맛을 봤다. 마지막 대회였던 봉황대기에서도 첫 경기에서 한광BC에 패했다. 권시우는 8일 열린 대회 1회전에서 5.2이닝 동안 96개의 공을 던지며 3실점(무자책)으로 분투했지만 패전 투수가 됐다.
이제 권시우의 시선은 다음 무대를 향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KBO 신인 드래프트. 권시우 역시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면 상위 지명이 유력하다. 서울권 구단 A 스카우트는 “선발과 불펜 모두 활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은 투수다. 선배 박정민(롯데) 못지않은 활약이 기대된다”라고 귀띔했다.
KBO리그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복수 구단 역시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미 광주일고 투수 박찬민과 덕수고 투수 겸 내야수 엄준상이 100만 달러가 훌쩍 넘는 금액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어 청담고 외야수 신희주가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그다음 후보로 권시우를 꼽았다. 실제로 MLB 세 개 구단이 권시우 영입전을 펼치고 있단 후문이다. 해당 관계자는 “아메리칸리그 2개 구단과 내셔널리그 구단이 권시우 영입을 놓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 권시우의 잠재력에 대단히 높은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권시우는 미국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서도 야구를 해보고 싶어요.”
가까운 친구의 미국행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권시우는 “(엄)준상이가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가지 않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라고 하더라”며 “미국은 시설도 좋고 한국과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만약 미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후회 없이 야구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가 배운 야구를 국내 팬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그게 진짜 제 목표입니다.” 도전이라는 단어에 권시우의 두 눈은 반짝였다.
베이스볼코리아 김지우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