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선수촌장 임기는 ‘고무줄 임기’. 역대 25명의 선수촌장 임기는 최단 3개월부터 최장 18년까지 각양각색이다. 대한체육회장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롤 모델인 선수촌장을 우대해주지는 못할망정 아직 임기가 남은 선수촌장을 멋대로 갈아치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2년 임기의 선수촌장은 적어도 대한체육회 회장 임기와 함께 시작해 4년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스포츠 빅 이벤트를 치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2일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챔피언하우스 대강당에서 제26대 장재근(61) 신임 국가대표 선수촌장의 취임식을 열었다. 장재근 신임 촌장은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및 1986 서울아시안게임 남자 200m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딴 경기인 출신. 육상국가대표 단거리 감독,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서울시청 감독 등을 역임하며 선수 양성과 관리에 대한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
특히 기초종목인 육상에서 아시아신기록, 한국신기록을 연달아 세운 것은 물론, 지도자로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통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항저우아시안게임과 내년 7월 열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선수단 관리 및 경기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대한체육회가 밝혔다.
장 촌장은 “선수촌장을 맡게 되어 매우 큰 영광이면서도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임 장 촌장이 오는 9월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보다 철저히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2021년 8월 도쿄올림픽이 끝나자 9월 1일자로 1984년 LA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8kg급 우승자인 유인탁(65) 전북체육회 사무처장을 신치용(67) 선수촌장 후임으로 임명했었다.
누가 보아도 유인탁 촌장이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는 대표선수들을 이끈 다음 2년 임기를 마칠 것으로 예상했었다. 유 촌장은 역대 선수촌장 가운데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입촌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롤 모델 역할을 해왔었다.
물론 선수촌에 입촌한 각 종목 선수는 저마다 코칭스태프가 있어 관리받고 있기는 하나 선수촌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선수촌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를 고려하면 1989년부터 올림픽이 열린 다음 해 1~2월에 대한체육회장을 선출, 4년 임기 동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대비하게 한 현행 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장이 임명하는 임기 2년의 선수촌장은 정치권 압력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이번 선수촌장 교체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정치권의 외풍을 견뎌내지 못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한체육회에 오래 몸담았던 한 체육계 원로는 “이 기회에 선수촌장도 임기를 4년으로 늘려 대한체육회장과 임기를 함께 시작해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치르게 하는 방안이 모색돼야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부터 대한체육회를 이끄는 이기흥 회장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 49개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금메달 75개)에 종합 2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종합 16위(금메달 6)로 1984년 LA올림픽 이후 37년간 지켜오던 세계 10위권 자리에서 밀려나 엘리트 체육 육성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역대 선수촌장 가운데 1919년생으로 2016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성집은 ‘태릉선수촌의 전설’로 불렸다. 태릉선수촌 45년 역사에 3대에 걸쳐 18년간 선수촌장을 지냈으니 ‘레전드’로 칭송받을 만하다. 서울 출신으로 휘문고보 재학시절 역도에 입문,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30대의 나이에도 불구, 거푸 동메달을 땄다.
그의 런던올림픽 동메달은 우리나라 올림픽 메달 1호. 김성집은 1976년부터 1994년까지 태릉선수촌 촌장으로 일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부터 종일 훈련장을 돌며 선수들을 독려, ‘호랑이’, ‘염라대왕’, ‘시아버지’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태릉선수촌 지옥 훈련으로 악명 높은 불암산 크로스컨트리 역시 그의 작품.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김성집이 선수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1984년 LA(6개), 1988년 서울(12개), 1992년 바르셀로나(12개) 등 세 번의 올림픽에서 30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휴식시간에는 인자하고 다정다감한 ‘집안 어른’으로 각 종목 코치와 선수들을 감싸 안는 특유의 친화력을 보였다.
이밖에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선수촌장은 1965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우승의 장창선,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이에리사 등이 있다. 김성집과 장창선은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스포츠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