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처럼 살아야 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진은 16일 임원회의를 개최했다. 협회는 이후 이번 회의를 통해 클린스만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경질하기로 결정했다고 같은 날 전격 발표했다.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현 아랍 에미리트(UAE) 감독의 지휘 아래 지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2002, 2010, 2022)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낸 한국 축구는 세계 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협회는 4년 간 함께한 벤투 감독과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고 클린스만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러한 결정에 클린스만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은 의구심을 품었다. 클린스만은 2019년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BSC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단 77일 만에 개인 SNS를 통해 사임하며 많은 빈축을 산 인물이다. 자국에서 열린 2006 월드컵에서는 독일을 이끌고 3위에 올랐으나, 후일 당시 주축 선수였던 필림 람의 자서전에 의해 그의 전술적 지시가 전혀 없었음이 알려졌다. 이 밖에 바이에른 뮌헨(독일), 미국 대표팀 등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밑천이 드러나며 모두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선임 과정 또한 깔끔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을 선임했을 당시 김판곤 전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현 말레이시아 감독)의 체계적이고 투명했던 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마이클 뮐러(독일) 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윗선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만 커졌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능력만 있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클린스만은 이후 무능함의 극치를 선보였다. 여러 차례 평가전을 치렀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축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축구를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반복되자 그는 “어떤 축구를 원하느냐”고 되물어보며 본인이 추구하는 축구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사령탑의 소신이 없자 한국 축구는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벤투 전임 감독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패스 플레이를 통해 점유율을 가져오는 ‘빌드업 축구’의 색체를 입히는데 4년여가 필요했지만, 선수들 개인 기량에 기대는 ‘해줘 축구’가 되는 시간은 불과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클린스만은 그해 9월 유럽 원정 두 번째 A매치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1-0승)에서야 가까스로 첫 승을 신고할 수 있었다.
무능하면 열심히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클린스만은 하지 않았다. 당초 한국 상주가 계약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택 근무를 좋아하는 그는 A매치나 국내 행사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한국을 찾았다. 대신 이 기간 클린스만은 ESPN 방송 패널 활동을 통해 유럽 클럽 팀들에 대해 떠들기에 바빴고, 당연히 인재를 찾기 위해 K리그 현장을 찾는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팀 클린스만의 실체는 최근 카타르의 우승으로 마무리 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 2023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6경기에서 10실점 하는 등 매 경기 졸전이 이어졌다. 토너먼트 들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 호주를 상대로 꾸역승을 수확, ‘좀비 축구’라는 새 별명을 얻었지만, 요르단과 4강전에서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날리지 못하고 0-2로 참패하며 어느 영화든 좀비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8일 귀국한 클린스만은 일부 팬들의 야유와 엿이 날아들었지만, 특유의 미소로 일관한 뒤 10일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여기에 최근에는 요르단과 4강전을 앞두고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몸 싸움을 벌인 것이 영국매체 더 선의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두 선수 모두 분명한 책임이 있다. 이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총 책임자 클린스만은 당시 이를 방관하며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뻔뻔하기까지 했다. 15일 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클린스만은 아시안컵 부진의 원인으로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를 꼽으며, 자신의 전술 및 전략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두 선수의 활약으로 기적처럼 4강까지 올라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 했으며, 감독으로서 선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역대급’ 무책임한 언행을 내뱉었다.
끝까지 추했다. 경질 공식 발표 전 클린스만은 SNS를 통해 작별을 암시하는 글을 썼다. 과거 헤르타에서 나올 때의 나쁜 버릇을 여전히 고치지 못한 것. 그는 또한 “지난 12개월 동안 13경기 연속 무패의 놀라운 여정에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했는데, 이 기간 한국이 상대한 팀들은 웨일스(0-0 무승부)를 비롯해 사우디(1-0 승), 튀니지(4-0 승), 베트남(6-0 승), 싱가포르(5-0 승), 중국(3-0 승), 이라크(1-0 승), 바레인(3-1 승), 요르단(2-2 무승부), 말레이시아(3-3 무승부), 사우디(승부차기 끝 승리, 공식적으로 1-1 무승부), 호주(2-1 승)였다. 객관적으로 한 수 아래의 적수들을 상대로 거둔 결과들을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세운 듯 떠벌렸다.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그렇게 클린스만은 1년여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한국 축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70여 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이 주어질 전망이다. 처음 취임 당시 200만 유로(29억 원·추정)의 연봉에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고,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 계약한 조건에 따라 협회가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클린스만과 함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몽규 회장은 경질 발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감독 해지 관련 사항은 변호사와 상의해야 할 것 같다”며 “혹시 금전적인 부담이 생긴다면 제가 회장으로서 재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인생은 클린스만처럼 살아야 한다. 단 누군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면 다른 누군가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피해자는 단연 한국 축구였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막대한 돈은 물론이고 아쉬운 시간까지 허비하게 됐다.
이한주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