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이정효, ‘서로를 위해’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MK초점]

광주 FC 이정효 감독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은 노력이다. 이 감독은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를 것’이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고자 밤을 지새워서라도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지도자다. 수많은 팬이 이정효란 이름에 열광하는 건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 보려는 이 감독의 올곧은 행보 때문이다.

광주가 제주 SK 원정을 떠났던 8월 30일이었다. 이 감독은 당시 책 한 권을 읽고 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저자-박소연)’란 책이었다.

광주가 창단 첫 코리아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직후였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동기부여를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코리아컵 결승전까지 경기를 거듭하면서 최대한 성장하길 바랐다. 이 감독은 책에서 자신의 계획에 조언이 될 만한 걸 찾고 있었다.

광주 FC 구단 엠블럼과 이정효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광주 FC 구단 엠블럼과 이정효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이정효 감독이 코리아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읽고 있었던 책. 사진=이근승 기자
이정효 감독이 코리아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읽고 있었던 책. 사진=이근승 기자

광주는 ‘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맞이해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웃지 못했다.

팀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결승전에서 퇴장당하고, 우승컵을 들지 못했지만 축구계에서 이 감독을 비판하는 이는 없다. 이 감독을 향하는 건 박수뿐이다. 이 감독은 2022시즌 광주 지휘봉을 잡고 K리그2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엔 K리그1 3위를 차지하며 창단 후 최고의 성적과 창단 첫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출전권을 확보했다. 2024-25시즌 ACLE에선 한국 팀 중 유일하게 토너먼트(16강)에 올라 8강까지 갔다. 2025시즌 코리아컵에선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팀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기록했다.

광주는 12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감독과의 동행 의지를 명확하게 했다. 광주는 4년 동안 이 감독이 보여준 압도적인 성과와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면서 “시민구단의 재정적 한계 속에서도 최고의 예우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올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불거진 이 감독의 거취 우려에 대한 구단의 의견이었다.

2024-25시즌 ACLE에서 8강에 올랐던 광주 FC. 사진=이근승 기자
2024-25시즌 ACLE에서 8강에 올랐던 광주 FC. 사진=이근승 기자

여기서 가정을 하나 해보자.

이 감독이 광주를 10년 더 맡는다면, 10년 뒤의 광주는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이 되어 있을까.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이란 단순히 성적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광주 프로축구단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고, 지자체 예산 없이 운영 불가능한 형태에서 최대한 벗어나 ‘지자체 예산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얘기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앞장서서 지자체 혈세 없이 운영 불가한 구단을 우후죽순(雨後竹筍) 늘려가는 현실에서 10년 내 지자체 예산 없이 자생력을 갖춰 독립하는 건 대한민국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우승할 확률보다 낮다고 단언한다.

광주가 이 감독과의 동행을 이어간다면, 광주는 지자체 혈세와 더불어 이정효란 거대한 스타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세상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없듯이 프로축구 산업에서 팀보다 위대한 인물은 있을 수 없다.

광주 FC 이정효 감독. 이 감독은 대표적인 학구파 지도자로 K리그 최고의 전술가로 평가받는다. 사진=이근승 기자
광주 FC 이정효 감독. 이 감독은 대표적인 학구파 지도자로 K리그 최고의 전술가로 평가받는다. 사진=이근승 기자
이정효 감독이 광주 FC를 맡은 이후 광주의 홈 경기 관중 수치. 표=이근승 기자
이정효 감독이 광주 FC를 맡은 이후 광주의 홈 경기 관중 수치. 표=이근승 기자

광주가 이 감독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제시해서 동행을 이어간다고 치자. 여기서 끝이 아니다. 광주는 남아 있는 선수들의 연봉도 인상해 줘야 한다. 광주엔 이미 구단이 활용할 수 있는 예산 범위를 뛰어넘는 연봉을 받는 선수가 여럿이다. 이런 구조는 광주의 재정건전화 규정 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광주 구단이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이 감독이 부임 후 거둔 성적만이 아니다. 광주가 성적만큼 눈여겨봐야 할 건 변화가 없는 홈 경기 평균관중 수다.

이 감독은 선수단을 이끄는 리더다. 어떤 감독이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경기장을 찾는 팬에게 좋은 경기를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게 감독의 업무이자 역할이다. 이 감독은 광주에서 자신의 역할을 늘 기대 이상으로 해왔다.

구단 프런트는 다르다. 프런트는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더불어 팬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팬의 숫자가 구단의 자생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까닭이다. 특히, 평균관중 수는 구단이 스폰서를 구할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광주의 홈 경기 평균관중 수는 늘 기대 이하다.

2024년 기아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을 기념하기 위한 카 퍼레이드에 참여한 팬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24년 기아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을 기념하기 위한 카 퍼레이드에 참여한 팬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22시즌부터 2025시즌까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인 기아 타이거즈의 관중 수치. 표=이근승 기자
2022시즌부터 2025시즌까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인 기아 타이거즈의 관중 수치. 표=이근승 기자
2025년 10월 기준 광주광역시가 광주 FC에 지원한 금액. 광주시는 올해에만 광주에 100억 원을 지원했다. 사진=정보공개포털
2025년 10월 기준 광주광역시가 광주 FC에 지원한 금액. 광주시는 올해에만 광주에 100억 원을 지원했다. 사진=정보공개포털

광주가 스포츠에 목마른 도시가 아닌 건 아니다. 광주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인 기아 타이거즈는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구단으로 꼽힌다.

기아의 홈 경기 평균관중은 2년 연속 광주의 약 3.5배였다. 기아가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구단이라고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치부하긴 어렵다. 광주는 2010년 창단했다. 광주에 터를 잡은 지 15년째다. 특히, 광주는 지자체인 광주광역시의 혈세로만 100억 원 이상을 지원받는다. 시도민구단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으면서도 평균관중 수에 무감각한 건 구단 내부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일이다.

광주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

광주는 구단 자금 상황에 맞는 선수단을 꾸려야 한다. 이 감독은 한국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올라섰다. 광주는 이 감독의 꿈을 담아내기에 어려운 구단이란 현실을 아프지만 인정해야 산다.

광주는 선수단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현실적으로 낮추고, 구단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반드시 충원해야 한다. 광주를 비롯한 시도민구단에선 프런트 1명이 3~4가지 업무를 병행하는 걸 흔히 본다. 100억 원이 넘는 한 해 예산을 선수단에만 쏟아붓는 게 당연해지면서 굳어진 악습이다. 이 경우 당장 반짝이는 성적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민구단이 그렇게 성과를 내면, 이듬해 핵심 선수는 떠날 수밖에 없다. K리그는 지자체 리그나 실업 리그가 아닌 프로이기에 당연한 현상이다.

광주 FC는 저력이 있는 구단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광주 FC는 저력이 있는 구단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광주는 저력이 있는 구단이다. 이 감독 전엔 남기일, 박진섭과 같은 K리그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를 배출해 냈다. 광주 유소년 팀인 금호고등학교는 한국 최고로 꼽히는 전통 있는 곳이다. 금호고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자 지도자로 활동 중인 윤정환과 김태영, 1990년대 후반 역대 최고의 재능으로 꼽혔던 고종수 등을 배출했다.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인 김태환, 엄원상, 엄지성, 나상호 등도 금호고가 배출한 재능이다.

당장 광주의 방향성은 우승이 아니다.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들 K리그1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단한 팀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급선무다. 내년은 그런 광주의 시작을 알리는 데 적기이기도 하다. 내년엔 K리그1 최하위(12위)를 기록하지 않는 한 강등 걱정이 없다. 김천상무가 최하위를 차지하면, 승강 플레이오프 걱정도 없다.

연맹이 2027시즌부터 K리그1 팀 수를 12개에서 14개로 늘리기로 한 까닭이다.

‘MK스포츠’ 취재에 따르면, K리그1은 이른 시일 내 16개 구단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최소 2시즌 이상은 강등 걱정 없이 내실을 다질 절호의 기회란 뜻이다.

냉정하게 광주가 ‘선수 이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구단 운영에 도움을 주려면, 한 해 스폰서 비용을 선수단 이적료 수입과 더했을 때 광주시의 지원 없이도 운영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상당한 금액의 이적료 수익이 매해 꾸준하게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최소한 매해 광주시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의 비중을 낮출 순 있어야 한다. 광주시로부터 지원받는 100억 원이란 혈세는 몇 년에 걸쳐서 지원되는 게 아니라 매해 나온다.

광주는 당장 우승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강점인 유소년 시스템을 강화하고, 구단 프런트가 자기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더해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1만 관중을 목표로 팬 확충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훈련 중인 광주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훈련 중인 광주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축구계가 정상이라면, 최소한 프로축구 선수들이 훈련장이나 잔디를 걱정할 일 없는 환경을 조성한 뒤 프로화가 이루어졌을 거다. 하지만, 1983년 프로축구의 탄생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듯이 소수의 이익에 따라서 ‘팀 수부터 늘리잔’ 식의 결과로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

프로축구단에서 ‘훈련할 곳이 없다’, ‘잔디가 너무 안 좋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프로축구 선수가 훈련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잔디 상태가 걱정인 곳을 상식적으로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구단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팬 1명을 1골, 1승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 예로 최근 아마추어 여자 축구 인기가 엄청나다. K리그 구단들도 여자 축구에 대한 접근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예산을 확충해서 초·중·고 여학생들의 축구 및 관람 경험 등을 크게 늘릴 필요성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전 위기가 있긴 했지만, 프로야구가 한국 최고의 프로스프츠란 위상을 지키고 있는 건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꼭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만이 유소년이 아니라 ‘유소년 팬’ 확충에도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광주 FC 서포터스. 사진=이근승 기자
광주 FC 서포터스. 사진=이근승 기자
2025년 시도민구단 예산 지원 현황. 사진=나라살림연구소
2025년 시도민구단 예산 지원 현황. 사진=나라살림연구소

광주는 돈 없는 구단이 아니다.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의 우승 상금은 여전히 5억 원이다. ‘4선’ 임기를 소화 중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연맹 총재를 맡았던 때인 2012년 결정된 사안이다. 광주가 K리그1 우승 상금 5억 원에 사활을 걸고 100억 원 이상의 지자체 혈세를 운용하는 건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이는 광주를 비롯한 모든 시도민구단에 해당되는 얘기다.

내년이면 K리그엔 29개 팀이 존재하게 된다. 지자체 혈세 없인 운영이 불가한 구단(19개)이 기업구단(10개)의 2배에 가까워진다.

강기정 광주광역시 시장(광주 FC 구단주)이 12월 9일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사진=강기정 시장 SNS
강기정 광주광역시 시장(광주 FC 구단주)이 12월 9일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사진=강기정 시장 SNS

광주 구단주인 강기정 광주시장이 12월 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봤다.

강 시장이 이정효란 큰 야망을 품은 감독이 광주에 오래 남길 바랐다면, 구단이 혈세 의존도에서 조금씩이라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덧붙여 그가 광주시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구단 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직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어떤 고충을 안고 근무 중인지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다.

광주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연대기여금 미납 및 재정건전화 규정 위반이 발생한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다면, 강 시장은 이 감독을 더 큰 곳으로 떠나보낼 준비를 마치고, 건강한 구단으로 나갈 계획과 방향성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가 직책에 걸맞은 ‘광주 구단주’였다면 말이다.

광주 FC 이정효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광주 FC 이정효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이 감독이 자신의 목표와 방향성이 같은 구단에서 역량을 더욱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이 감독과 광주 모두를 위한 길이자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광주는 눈앞의 성적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행정을 떨쳐내고, 장기적인 계획과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시기다. 그게 어려운 환경 속 여러 지도자, 선수를 배출해 낸 광주의 저력과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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