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이중 태도를 꼬집어 비판했다. 죽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한 헬멧은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다는 이유로 출전 금지 징계를 내렸으나, 나치 올림픽으로 알려진 1936 베를린 대회 포스터가 담긴 티셔츠를 버젓이 공식 스토어에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한국시간) IOC는 우크라이나 스켈레톤에 참가하는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의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헬멧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데, 헤라스케비치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목숨을 거둔 자국 선수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이 새겨진 헬멧을 꺼내 들었다. 이에 IOC는 선수 표현의 자유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가 금지를 통보했다.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은 이탈리아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를 찾아 헤라스케비치의 헬멧을 두고 설득에 나섰지만, 그는 추모 헬멧을 쓰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IOC는 그에게 대회 참가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게 됐다. 헤라스케비치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지만, 기각되며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헤라스케비치 소식에 응원의 목소리가 퍼지는 한편, IOC의 이중적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져갔다. 올림픽 공식 스토어에서 1936 베를린 대회 포스터가 담긴 티셔츠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대회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 체제에서 선전 목적으로 열렸다. 올림픽 공식 스토어는 해당 대회의 역사적 배경 설명 없이 해당 제품을 역대 동·하계 올림픽을 기념하는 ‘헤리티지 컬렉션’으로 판매해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디 애슬레틱’의 스티브 버클리 기자는 “IOC가 우크라이나 선수의 헬멧이 정치적 메시지라는 이유로 금지했지만, 1936년 베를린 대회 티셔츠는 합법화했다”라고 꼬집으며 “해당 티셔츠에 새겨진 포스터는 나치 정권이 아리아 민족의 인종 우월주의라는 망상을 퍼뜨리기 위해 이용했던 의미”라고 전했다.
티셔츠 내 포스터에는 스와스티카 문양이나 나치 군인, 히틀러의 모습은 없다. 다만 월계관을 쓴 사람이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고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서 있다. 이를 두고 버클리 기자는 “오른팔은 화면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올림픽 성화’를 든 것일까? ‘나치식 경례’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라며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당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민족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선전 도구가 된 것은 분명했다”라고 설명했다.
버클리 기자는 1936년 대회가 일명 ‘나치 올림픽’이라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짚었다. 당시 미국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가 금메달 4개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인물도 있다. 단거리 선수였던 마티 글릭먼과 샘 스톨러다. 두 선수는 경기 하루 전날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강제로 오웬스가 랄프 메트칼프와 함께 두 선수를 대신해 400m 계주에 나서게 된 것. 글릭먼과 스톨러의 출전 불가 통보는 훗날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제품이 비판을 받자 IOC는 사태 수습에 나섰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우리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1936년 대회는 이미 열렸다”라며 “해당 상표의 유효성은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상표 사용을 중단하면 다른 사람들이 상표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해당 제품을 소량만 생산한다. 주된 이유는 저작권을 보호하고 오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라고 해명했다.
버클리 기자는 “헤라스케비치의 헬멧은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올림픽 티셔츠는 ‘헤리티지 컬렉션’의 일부로 판매됐다. 가격표가 달려 있다고 상표권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티셔츠를 사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해당 제품은 ‘품절’로 표시됐다. 그러나 어딘가에 남게 된다. 이미 해당 대회 포스터 원본은 온라인상에서 2,500달러(한화 약 36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헤라스케비치의 헬멧에는 하늘로 떠난 동료들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헬멧에는 러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없다. 이는 1936년 대회 포스터가 선전 목적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