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FC 정경호 감독은 스타 선수 출신이다.
정경호는 2006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됐던 국가대표 선수였다. 정경호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와일드 카드(24세 이상 선수)로 출전했고, 같은 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도 나섰다.
그런 정경호가 생애 첫 정식 감독이 되기까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무려 11년이 걸렸다. 그는 2014년 울산대학교 코치를 시작으로 성남 FC 2군, 상주상무(김천상무의 전신), 성남, 강원 등에서 묵묵히 지도자의 기반을 다졌다. 2022년 성남에서 감독대행을 맡긴 했지만, 이것이 정식 감독의 기회로 이어지진 않았다.
정경호 감독은 2025년에서야 강원에서 첫 감독 기회를 잡았다.
지도자의 철학은 자신감으로도 표현된다. 정경호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굉장히 자세하고 섬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도자다.
지도자 정경호는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까지 증명하고 있다. 감독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강원은 K리그1 5위, 코리아컵 4강에 올랐다. 2025-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선 FC 서울과 함께 K리그1 최고 성적인 16강에 진출했다. 강원이 구단 역사상 첫 ACLE에 도전해 일군 성과다.
감독 2년 차인 올 시즌엔 초반의 부침을 과감한 전술 변화로 극복하며 전반기를 4위로 마치는 저력을 보였다.
‘MK스포츠’가 6월 10일 강원의 전지훈련지인 강원도 정선에서 정경호 감독과 나눈 이야기다.
Q. 월드컵 휴식기에 있었던 휴가는 어떻게 보냈나.
열흘 정도 쉬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반기 성적이 다행히 괜찮아서 조금 편안하게 쉬었던 것 같다.
Q. 쉬는 날에도 축구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감독이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웃음). 육체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는 거다. 쉬면서도 머릿속에선 축구 생각이 쉼 없이 오갔다. 전반기에 잘했던 부분은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을 거듭했다. 부족했던 부분은 어떤 식으로 보완해야 할지 생각했다. 감독은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자다가도 우리 팀의 발전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우리 직업이 아닌가 싶다.
Q.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할 듯한데.
나는 지나간 일을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 시시각각 바뀐다. 팀이 경기에서 패했을 때 감독인 내가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면 선수단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내가 빨리 털어내야 선수들이 다음 경기 준비에 매진할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그래야 좋은 에너지가 많아지지 않겠나. 선수들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강원의 올 시즌 전반기를 평가한다면.
감독으로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감독으로 처음 ACLE를 경험했다. 내가 코치 생활을 11년 이상 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경험한 아시아 대회이기도 했다. 경험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또 느꼈다. 우리가 ACLE 일정으로 시즌 시작이 빨랐다. 동계 훈련 계획을 짜는 것부터 과거와 달랐다. 올해 초 호주, 일본 원정 등이 이어지면서 배운 게 많다.
Q. 예를 들면?
호주는 이동 거리가 상당히 길다. 계절도 한국과 다르다. ACLE를 소화하던 중 올 시즌 K리그1을 시작했다. 한국은 굉장히 추운 시기였다. 일정이 과거와 달랐지만, 동계 계획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선수들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았다. 2주 먼저 시작하는 게 진짜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가 그 2주를 조금 간과했던 것 같다. ACLE와 리그 병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알게 됐다.
Q. 감독으로서 배우고 느낀 게 정말 많은 듯 보인다.
ACLE와 K리그1을 병행하려면 선수단 컨디션 관리에 훨씬 더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ACLE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일정을 보면, 울산 HD와의 리그 홈 개막전 후 마치다 젤비아와의 ACLE 16강 1, 2차전으로 이어졌다. 준비 과정에서 무언가 꼬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 흐름이 리그 초반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Q. 그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나.
경기력은 시즌 초에도 나쁘지 않았다. ‘골 결정력만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린 올 시즌 리그 여섯 번째 경기인 광주 FC전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광주전을 준비하면서 전술을 바꿨다.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우리의 방향성을 수정한 거다. 광주전을 계기로 전반기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시즌 중 큰 틀의 변화를 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나는 코치 생활을 오래 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좋은 결과는 물론 나쁜 결과까지도 예상한다.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설명했다. ACLE를 통해 축구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느꼈다. 개인적으로 빌드업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상대를 끌어내서 조금씩 균열을 내는 형태인데 요즘 트렌드를 보면 빠른 공·수 전환이 더욱 중요해졌다.
Q. 강원 축구를 보면 알 수 있는 듯하다.
빌드업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공격 전개 시의 위치, 때론 직선적인 패스와 침투 등이 필요하다. 어떻게 접근해야 상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가 지도자 생활을 2014년에 시작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큰 영감을 준 감독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맨체스터 시티와 작별한 펩 과르디올라다.
Q. 과르디올라 축구에 특히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가 있을까.
과르디올라 감독은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시티를 거치면서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제시해 왔다. 한 감독이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을 유심히 지켜보고 연구하면서 내 축구 철학의 기반을 쌓은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많은 젊은 감독이 유럽의 유능한 지도자를 보면서 영감을 얻고 큰 노력을 기울인다. 다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있다.
Q. 어떤 부분인가.
세계 어떤 지도자든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은 축구를 구현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과르디올라의 축구를 구현할 순 없다. 세계 축구 트렌드와 우리 팀의 장·단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올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민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을 더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Q. 변화의 시작이었던 광주전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건 무엇인가.
핵심은 전방 압박과 높은 에너지 레벨이었다.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누르고자 했다. 스프린트와 같은 고강도 움직임도 많이 나오길 바랐다. 우리의 변화가 통하면서 상대가 쉽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Q.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기존 철학을 어찌 보면 버린 것 아닌가. 시즌 중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와 ACLE 16강에서 맞붙었던 마치다가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ACLE와 K리그1을 치르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축구를 과연 100% 이뤄낼 수 있느냐’는 거였다. 짧고 빠른 패스를 기반으로 상대를 완전히 내려앉히고, 기술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내 승리까지 쟁취할 수 있을까 나에게 먼저 물었다.
Q. 어떤 답이 나왔나.
냉정하게 지난 경기들을 봤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점유율이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승점 3점을 가져오지 못했다. 축구는 골이 나와야 이길 수 있다. 볼 점유율이 90%를 넘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웃을 수 없다. 승점 3점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렇게 자그마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간의 경험과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답을 도출한 거다.
Q. 시즌 중 큰 틀의 변화는 선수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선수들을 이해시키고 그 축구를 이행하는 건 또 다른 능력인 것 같은데.
감독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우린 우리 축구에 대한 믿음이 컸다. 빌드업을 통해 상대를 어렵게 만드는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던 거다. 다만 나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골만 들어가면 될 것’이란 답만 생각했다. 질문을 바꿨다. ‘골을 넣기 위해 이 방식이 최선인가’란 것이었다.
Q. 거기에 대한 답은 무엇이었나.
‘아니’란 답이었다. 파리 생제르맹이나 아스널, 맨시티 등 세계적인 팀의 득점과 실점 상황을 유심히 봤다. 답은 빠른 공·수 전환, 트랜지션 상황에 있었다. 세계적인 팀들도 볼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진 못한다. 높은 확률로 승부를 가르는 건 상대 볼을 빼앗았을 때 얼마나 빠르게 상대 진영에 도달해 슈팅까지 가져가느냐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답이 보인다. 트랜지션이다.
Q.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굉장히 구체적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감독이다.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다. 무언가를 제시만 해선 안 된다. 방향을 제시했으면, 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게 감독의 능력이고 역할이다. 트랜지션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리듬으로 끌고 갈 것인지, 어떻게 해야 공격으로 더 빠르게 나아갈 것인지, 볼을 가지고 있을 땐 어떤 공간을 공략할 것인지 등을 세부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했다. 선수들에게 세계적인 팀들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왜 시즌 중 전술을 수정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해시켰다.
Q. ACLE에서 일본 J1리그 팀들의 상승세가 이어졌다. 요즘엔 일본 선수들이 피지컬에서도 한국을 앞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마치다에 (나)상호가 있지 않나. 상호에게 훈련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물어봤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훈련 강도가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훈련 내용도 굉장히 디테일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져가야 할 움직임, 팀으로서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한 듯했다. 일본 팀들의 데이터를 보면 고강도 움직임에서 한국을 크게 앞선다. 한국과 일본이 뛰는 양은 비슷한데 고강도 움직임에서 차이가 있는 거다.
Q. 원인이 있을까.
전체적인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K리그1에선 이기고 있는 팀이 내려서는 경우가 흔하다. 이기고 있는 팀은 시간이 갈수록 수세에 몰리는 거다. 올 시즌 전반기를 마치고 일본 팀들의 데이터를 모두 뽑아서 분석해 봤다. 앞서도 말했지만 뛰는 양은 차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고강도 움직임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나느냐. 답은 수비에 있었다.
Q. 수비?
볼을 빼앗겼을 때 어떤 지점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얼마나 빨리 수비에 가담하느냐다. 우리가 광주전에서 전술을 바꾼 뒤로 고강도 데이터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데이터를 보면, 전술을 바꾸기 전까진 6:4의 비율로 공격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트랜지션을 중요시한 전술로 바꾸고 나서 공격과 수비의 비율이 4:6으로 바뀐 것이다. 공격권을 최대한 빠르게 찾아와서 득점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Q. 세계 어느 지도자든 자기 축구에 대한 고집도 있지 않나.
빌드업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다. 상대 진영에서 우리가 이전까지 해왔던 빌드업이 필요한 때가 있다. ‘처음부터 빌드업으로 나아가자’는 개념이 ‘공간이 있으면 그 공간을 최대한 빠르게 활용하고, 빌드업을 시도하자’로 바뀐 거다.
Q. 요즘 유소년 지도자부터 프로 지도자까지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꽤 한다. 이 의견엔 동의하는 편인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일본이 옛날 한국식으로 운동한다’는 거다. 데이터를 보면 그런 흐름이 보인다. 일본이 좀 더 직선적인 축구, 전방 압박, 스프린트 등 높은 강도의 운동 능력을 보인다. 한국은 빌드업, 기술 등을 중시하는 과거 일본을 따라가는 흐름인 거다. 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Q. 어떤 부분일까.
일본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일본 선수들은 유소년 시절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다. 축구에 필요한 기술을 유소년 때 확실히 익히는 거다. 일본은 그 상태에서 우리의 강점을 더한 거다. 시간을 조금 더 돌려보자. 과거 일본은 좋은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한국에 밀렸다. 기술에선 앞설지 몰라도 피지컬, 멘털에서 밀렸던 거다. 일본이 어찌했나. 일본은 한국의 강점을 배우려고 했다. 한국 선수들은 물론 지도자까지 일본 무대로 불러들였다. 일본은 기존 강점은 살리면서 다른 걸 받아들인다. 이게 한국과의 차이다.
Q. 좀 더 얘기해줄 수 있나.
우리는 기술을 중시하면서 기존의 강점을 버렸다. 일본과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하지 않나 싶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우리도 우리의 것은 계속해서 살려나가며 기술을 더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현대 축구에서 더 중요해진 고강도 운동 능력은 본래 우리의 강점이었다.
Q. 기술이라는 건 흔히 유소년 단계에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본다. 프로 선수도 기본기나 기술 능력이 향상될 수 있나.
나는 지도자 생활을 대학교에서 시작했다. 경험상 가능하긴 하다. 단, 쉽진 않다. 보통 중·고등학교 때 자기 스타일이 확립된다. 이를 바꾸려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수만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다. 지도자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가르쳐야 한다. 대학에선 이런 지도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프로에선 조금 힘든 부분이 있다.
Q. 이유가 있을까.
말 그대로 프로이기 때문이다. 프로는 결과를 내야 하는 곳이다. 팀의 목적과 방향성이 명확하다. 프로 훈련은 우리의 방향성에 맞는 전술을 익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안에서 개개인의 특색과 장점을 살린다. 선수 개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보완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프로에선 지도자가 선수 개개인의 발전에 쏟을 시간이 부족한 거다. 프로에선 그 시간을 팀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써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Q.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빠르게 알아보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능력으로 꼽힌다. 성남 수석코치 시절엔 김지수, 강원 수석코치 시절엔 양민혁의 잠재력을 빠르게 알아보지 않았나.
지도자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관찰력이다. 선수를 자세히 봐야 한다. 나는 선수의 단점은 웬만하면 보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지만 프로는 결과를 내야 하는 곳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단점을 보완하는 데 쓸 시간을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쓰는 것이 낫다. 장점을 살리면, 단점을 감출 수 있다고 본다. (김)지수가 고등학생 때였다. 한 번 보고 프로로 올린 게 아니다.
Q. 오랫동안 지켜본 건가.
꾸준히 지켜봤다. 지수는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대담했다. 스피드는 조금 느렸지만 고교생이라고 보기 힘든 여유가 있었다. 지수의 최고 장점은 경기를 읽는 눈이었다. 지수를 꽤 오랫동안 지켜본 뒤 김남일 감독께 “지수를 써 보자”고 요청드렸다. 초반 몇 경기는 불안할 수도 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급성장할 것 같았다.
Q. 당시 성남은 K리그1 소속이었다. 고교생인 중앙 수비수를 쓰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처음엔 다 반대했다. 모두가 “불안해서 안 된다”고 했다. 지수를 불렀다. 지수에게 “자신 있냐”고 물었다. 지수가 “자신 있다”고 했다. 지수에게 말로만 그러지 말고 운동장에서 “증명해 보라”고 했다. 덧붙여서 “나는 네 재능을 봤다. 그걸 경기장에서 표출하는 건 네 몫”이라고 했다. 지수에게 훈련 기회가 주어졌다. 지수가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강점을 보여줬다.
Q. 김지수가 2022시즌 K리그1 12라운드에서 만 17세 4개월 20일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다.
내가 김남일 감독께 “선발로 45분만 뛰게 하자”고 요청드렸다. 지수가 그날 엄청 잘했다. 김남일 감독께서 전반전을 마친 뒤 “후반전도 뛰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내가 반대했다. 김남일 감독께 “지금 빼야 한다. 전반전에 좋았던 느낌을 가지고 나와야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김남일 감독께서 내 의견을 받아주셨다. 지수가 후반전까지 뛰다가 단점이 노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감을 잃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 거다.
Q. 이유현, 황문기 등은 포지션을 바꿔 K리그1 최정상급 자원으로 키워냈다. 지도자 정경호만의 비법이 있는 걸까.
상무에서 3년가량 코치 생활을 했다. 그때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K리그1 최고 수준의 선수가 상무로 온다. 다만 상무는 포지션별로 원하는 선수를 뽑을 순 없다. 몇몇 포지션에선 선수가 부족했다. 그때 여러 선수의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이 포지션에 써보고, 저 포지션에도 써봤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긴 어렵다. 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유현, 황문기 등의 포지션 변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거다.
Q. 선수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로부터 포지션 변경을 제안받는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지 않나.
앞서 말한 대로 경험이 있지 않나. 그 경험을 통해 포지션 변경에 관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제일 중요한 게 ‘그 자리에서 경기를 못 뛰는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다. 잘 뛰고 있는 선수의 포지션을 바꿀 필요는 없지 않나. (황)문기가 그랬다. 문기가 처음 왔을 땐 다양한 포지션을 거쳤으나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반등하려면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문기는 경기 출전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다. 문기에게 이야기했다.
Q. 어떤 이야기를 했나.
문기에게 “경기 뛰고 싶지?”라고 물었다. 문기가 고민 없이 “뛸 수만 있다면 어느 포지션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문기에게 “사이드백 한 번 볼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바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문기는 공격력에 강점이 있는 미드필더였다. 그 장점에 ‘한 번 해보겠다’는 절실함이 더해지면 좋은 모습이 나올 것으로 봤다. (이)유현이도 마찬가지였다.
Q. 이유현의 본래 포지션이 황문기의 변경 포지션인 오른쪽 풀백 아니었나.
맞다. 문기가 사이드백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유현이의 자리가 사라졌다. 유현이에게도 똑같이 접근했다. 유현이에게 “너 뛰고 싶지? 내가 네 자리를 만들어볼 테니 미드필더로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유현이도 “경기에 나설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 맡겠다”고 했다. (이)기혁이도 똑같았다. 기혁이도 프로에서 미드필더, 측면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오갔지만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유현이나 기혁이나 각자의 장점을 생각하면서 뛸 수 있는 새 포지션을 제안했던 거다.
Q. 김지수나 양민혁은 대단히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맞다. 재능이 다르다. 다만 재능만으로 프로 데뷔가 빠를 순 있지만, 오래는 못 간다. 축구를 어떤 태도로 대하며 노력하느냐가 성장을 좌우한다. 그래서 재능을 가진 선수가 노력하면 진짜 무서운 거다.
Q. 재능은 특출난데 일찌감치 사라진 선수가 많긴 하다.
많은 천재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수 시절부터 천재로 불린 여러 재능을 봤다. 많은 선수가 불성실했다.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나빴던 거다. 내가 유소년이나 대학에서 지도자 생활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
Q. 어떤 조언인가.
지도자는 재능만 보면 안 된다. 그 재능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 건지 가르쳐줘야 한다. 축구를 대하는 태도, 축구를 대하는 진심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재능도 꽃피울 수 없다. 성실함이 있어야 재능이 배가 된다. 선수의 재능만 보고 칭찬만 하면, 그 선수는 망가진다. 내가 처음 지도자 생활을 대학에서 하지 않았나. 그때 그런 선수를 많이 봤다.
Q. 비슷한 특징이 있었나.
고교 시절 특출났던 선수들이 대학으로 온다. 보면 어깨가 올라가 있다. 신입생 때부터 자기가 선발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수들의 고교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칭찬만 들었다. 고교 감독이 경기에서 이겨야 하니까 좋은 얘기만 했던 거다. 나는 그런 선수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Q. 어떻게 했나.
기본 자세부터 바꿨다. 태도가 안 되어 있는데 어떻게 좋은 선수가 되겠나. 축구를 겸손하게 대하도록 했다. 훈련부터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좋은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감독이 된 뒤로 많이 바뀌었지만, 코치 시절엔 강성으로 불렸다. 그래서 오해도 불러오곤 했지만, 그때의 경험들이 감독 생활을 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를 코치 시절부터 봐 온 선수들은 “정 쌤, 왜 이리 착해지셨어요?”라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Q.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다. 그때의 경험이 감독 생활을 하는 데 어느 정도로 도움이 되는 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데도 감독은 어렵다. 코치 때와는 많은 게 다르다. 코치 땐 과감하게 결정했던 것들도 감독의 자리에선 그리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더라. 다만 이 차이는 있다. 감독의 경험도 쌓이지 않나. 그때부터 코치 경험들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 내가 코치 때 경험했던 것들이 다양한 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는 거다.
Q. 정경호 감독은 스타 선수 출신이다. 그런데 첫 감독을 맡기까지 11년 이상이 걸렸다. 조급함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있었지. 나도 프로에서 웬만큼 했고, 올스타에도 뽑혔다. 베스트 11에도 선정됐고, 태극마크도 달았다. 월드컵(2006)에도 가봤고, 올림픽(2004)이나 아시안컵(2004)에선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톱 클래스 선수는 아니었다.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랄까. 지도자를 시작한 이후 어느 시점이 지났을 땐 ‘이젠 감독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Q. 성남에서 감독대행을 해보긴 했다.
그때 느낀 게 있다. 나 스스로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감독이란 자리가 만만한 게 아니란 걸 느낀 거지. 최하위에 내려앉은 상태에서 감독대행을 맡긴 했지만, 여기서 잘해서 기회를 한 번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승점 차가 워낙 났던 상황이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능력 있는 감독이라면 상황이 어떻든 결과로 보여줬어야 한다. 그때 마음을 비웠다. 더 준비해서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Q.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지도자라는 게 그렇다. 제아무리 좋은 철학을 가졌더라도 그걸 구현해서 결과로 내보이지 못하면 능력이 부족한 거다. 성남에서 감독대행을 마무리하고 더 배우고자 했다. K리그 TSG(기술연구그룹)와 해설위원 등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자 했다. 그러던 중 윤정환 감독과 인연이 닿아 강원 수석코치로 오게 됐다. 그때 다른 마음은 없었다. 내 역할에 충실하면서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게 강원에서의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Q. 조금 민감할 수도 있지만 물어보겠다. 한국 축구계엔 선수 시절의 명성만으로 지도자 기회를 쉽게 얻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정경호 감독처럼 코치 경력을 쌓고 쌓아서 감독의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 유명 선수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감독 기회를 너무 쉽게 얻는 거다. 그런 걸 보면서 실망스러울 땐 없었나.
그래서 지금 코치 생활을 오래 하고 계신 분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다들 프로에서 딱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거다.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겠다. 냉정하게 프로 구단 코치의 연봉은 높은 편이 아니다. 프로 코치면 대부분 가장이다. 경제적인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 부분은 15년 가까이 변화가 없다.
Q. 코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제적인 부분 못지않은 고충 중 하나가 자기 시간이 없다는 거다.
맞다. 자기 인생을 팀에 바쳐야 한다. 식구들하고 떨어져 지내는 게 다반사다. 가족을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다. 그런데 업무량과 스트레스는 높고, 연봉은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코치로 경력을 쌓는 건 딱 한 번의 기회를 통해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설령 그 기회를 잡는다고 해도 꿈을 실현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10년 넘게 고생해서 기회를 잡았는데 1년도 못 가서 자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흔하다. 참 어렵다.
Q. 지도자 시작 11년 만인 2025년 처음 정식 감독이 됐다. 그때의 감정 기억하나.
정말 힘들게 올라왔다(웃음). 내가 11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지만 감독은 진짜 달랐다. 초반엔 정말 힘들었다. 특히 강원이 2024시즌 K리그1 준우승이란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을 내지 않았나. 엄청난 기대를 받으면서 지휘봉을 잡은 거다.
Q.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11년이란 세월이 잊히는 것이라고 봤다. 솔직히 두려웠다. 내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1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삭발을 했던 거다.
Q. 기억난다. 축구계를 놀라게 했던 삭발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11년 동안 인내한 시간이 한 번에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집중을 못 하겠더라.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네가 11년 고생했는데 이렇게 두려워만 할 거냐. 네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겨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이란 각오로 머리를 밀었던 거다.
Q. 힘든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나 2025시즌 K리그1 5위를 기록했다. 직전 시즌 워낙 대단한 한 해를 보내긴 했지만, 구단 전체 역사를 돌아보면 박수받아야 하는 시즌이었다.
인생을 걸지 않았나(웃음). 모든 걸 쏟아내서 위기를 극복했고, 리그 5위, 코리아컵 4강, ACLE 16강이란 성적을 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지금도 모든 걸 쏟아내고 있다. 지도자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적은 금세 과거가 된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건 내일의 경기력과 결과다. 계속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축구로 결과까지 잡아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서 더 좋은 축구를 내보이는 게 나의 역할이자 임무다.
Q. 지금 한국 축구계엔 국가대표나 프로 경력 없이 지도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도 많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땀 흘리는 무명 선수 출신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맞다. 정말 많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축구계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많이 바뀌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서 나 때만 해도 이름값이나 인맥 등에 따라서 감독 선임이 이루어지곤 했다. 지금은 K리그만 봐도 준비된 지도자를 찾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경험은 조금 부족해도 감독으로서 역량과 잠재력을 보이면 기회를 받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치다와 경기하면서 인상 깊었던 게 또 있었다.
Q. 어떤 것이었나.
마치다의 쿠로다 고 감독이다. 이분은 오사카체육대학에서 학생선수로 활동하다가 졸업 후 2년 뒤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대 때인 1994년 아오모리 야마다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해 2022년까지 유소년 육성에 힘쓴 거다. 그리고 2023년부터 마치다를 이끌고 있는 분이다. 이분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진 내가 감히 예단할 순 없다. 다만 이분의 삶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된 것을 얼마나 내보일 수 있느냐다. 지금 내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분명 온다. 그때 얼마만큼의 역량을 내보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거다.
Q. 이와 관련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더 있는 듯하다.
시대가 바뀌었다.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정말 후회 없이 부딪혔으면 좋겠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축구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나. 내가 더 잘하고 싶은 이유엔 이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시는 많은 분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
Q. 한국 축구계에서 선수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흔히 알고 있다. 하지만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하는지는 조금 덜 알려져 있다.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겸손함을 잃지 말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예를 들면 고교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도자가 있다. 그 지도자는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나는 ‘내가 최고’라고 믿는 거다. 또 하나는 ‘고교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대학에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준비하는 거다. 후자를 따라야 한다. 항상 더 높은 곳을 봐야 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좋은 지도자는 무수히 많다. 현실에 만족하는 순간 발전은 없다.
Q. 유럽 축구도 많이 챙겨보지 않나.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럽에서 좋은 축구를 하는 팀들의 경기를 유심히 관찰한다. 우리 팀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한다. 유럽 팀들의 전술을 상대 팀 전력분석하듯이 하나하나 보다 보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과르디올라의 맨시티 축구를 싹 가져오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을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 자체가 지도자의 성장을 이끈다는 거다.
Q. 정경호 감독의 꿈은 무엇인가.
거창하지 않다. 이 감독직을 유지하는 거다. 나 진짜 힘들게 이 자리까지 왔다(웃음). 강원 감독을 계속 맡고 있다는 건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국가대표팀 감독이나 유럽 도전을 꿈꾸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 삶을 이어가고 싶다.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하루하루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정도면 행복한 삶 아닌가.
Q. 감독이 선수보다 재밌나.
선수가 편하다. 선수는 나만 잘하면 된다. 내 몸 관리 잘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신경을 나에게만 쏟는 거다. 감독은 신경 써야 할 범위가 넓다. 코칭스태프, 선수들 관리해야 하고, 프런트와의 소통도 이어가야 한다. 능력도 출중해야 한다. 과거엔 전술형 감독, 매니지먼트형 감독 등으로 유형을 나눴다. 지금은 다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Q. 그렇게 바뀌는 이유가 있을까.
선수가 감독을 평가하는 시대가 왔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전하려면 다 잘해야 한다. 전술이면 전술, 매니지먼트면 매니지먼트 모든 능력을 고루 보여줘야 선수들이 믿고 따른다. 선수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줘야 감독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겠나. 선수 성향, 그에 맞는 전술과 조합, 선수 개개인의 성장을 끌어내는 각기 다른 동기부여 등 해야 할 게 많다. 그걸 해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할 수 있다. 내가 겸손함을 잃지 않고 매일 노력하는 이유다.
Q. 정경호 감독이 만약 과르디올라 감독을 만난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까.
과르디올라 감독을 만난다면 앞으로의 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물어보고 싶다. 덧붙여서 우리가 볼 때 과르디올라는 큰 성공을 이룬 지도자 아닌가. 지도자로서의 업적에 만족하고 있는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과거 어떤 부분을 부족하다고 느꼈고, 어떤 걸 더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시티를 떠나면서 한 인터뷰 중에 인상 깊은 부분도 있었다.
Q. 어떤 부분이었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시티를 떠나면서 후회하는 일을 하나 꼽았다. 맨시티 부임 첫 시즌 주전 수문장이자 잉글랜드 국가대표였던 조 하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조 하트에게 자신을 증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걸 정말 후회한다고 하더라.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Q. 계속 이야기하시라.
지도자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인내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기다림이 왜 중요한지는 경험해 봐야 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아, 나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지’라고 생각했다.
Q. 축구가 여전히 재밌나.
축구는 정말 어렵다. ‘재밌다’고 표현할 순 없다. 그건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다. ‘충분히 준비된 것 같다’고 느낄 때면 변함없이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가고 있는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도 온다. 항상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이 항상 옳다는 법도 없다. 경험이 더 쌓인 10년 뒤쯤엔 그래도 좀 재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웃음). 축구는 정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정답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길을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니까 하는 것 아니겠나. 늘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 보겠다.
[정선=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