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63)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빈손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회 전부터 우려를 샀던 허약한 선발투수진은 올림픽 기간 내내 불펜에 큰 부담을 줬다. 과거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류현진(34, 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3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봉중근(40), 윤석민(36)처럼 한 경기를 확실하게 책임져 줄 원투펀치가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했다.
원태인(21), 최원준(27) 등 현재 KBO리그를 대표하는 토종 선발투수들은 첫 성인 국가대표 무대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제구력과 결정구 향상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채 소속팀으로 복귀하게 됐다.
도쿄올림픽에서 2경기 10이닝 5실점(4자책) 18탈삼진을 기록한 투수 이의리. 사진=천정환 기자
수확이 있다면 좌완 영건 이의리(19)의 발견이다. 이의리는 도쿄올림픽 두 차례 선발등판에서 모두 5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홀로 제 몫을 해냈다.
지난 1일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녹아웃 스테이지 첫 경기에서 5이닝 4피안타 1피홈런 9탈삼진 3실점, 5일 미국과의 패자준결승전에서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9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다.
비록 2경기 연속 피홈런 허용은 옥에 티였지만 140km 중후반대의 위력적인 직구와 낙차 큰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 던지며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줬다. 류현진, 김광현의 해외 진출 이후 명맥이 끊긴 대한민국 좌완 에이스의 계보를 충분히 이을 수 있는 재목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한국으로서는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마운드 구성에 있어 이의리를 중심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짤 수 있게 됐다. 부상, 부진만 없다면 향후 10년간 국가대표 마운드를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깜짝 선발됐던 또 다른 좌완 영건 김진욱(19)도 4경기 2⅔이닝 무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결정전 전까지 단 한 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는 배짱투가 돋보였다.
도쿄올림픽에서 4경기 2.2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투수 김진욱. 사진=천정환 기자
승부처에서 중용되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투수가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공을 던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한국 야구는 도쿄올림픽 실패와는 별개로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 2023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프리미어12 등 국제대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투수들의 성장 없이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도쿄에서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이의리, 김진욱 등 유망주들이 성장세를 이어가야만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