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KBO리그 정규시즌 중단사태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정지택 총재의 '리그 중단 찬성 표결'을 보도한 매체에 이례적으로 엄정대응을 공언했다. 하지만 그 뒤 KBO가 보인 행보는 '엄정대응'이 아니라 '어물쩍'에 가깝다. 엄포만 놓고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려하지 않고 있다.
두산 베어스와 NC다이노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지난 7월, 리그가 중단된 것과 관련해 지난달 인터넷 매체 엠스플뉴스는 ‘리그 중단을 최종 결정한 이사회가 KBO 정관을 어겼고, 정지택 KBO 총재가 독단적으로 리그 중단을 의결했다’고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정지택 총재가 ‘긴급이사회에서 결정적인 리그 중단 찬성표를 던진 사실 역시 드러났다’라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 취임한 정 총재는 두산그룹 고위급 임원을 지냈고, 두산 베어스 구단주 대행을 지낸 두산 쪽 인사다.
지난 14일 두산 베어스와 kt위즈의 한국시리즈 개막을 선언하는 정지택 KBO 총재. 사진=김재현 기자
아무래도 집단 감염이 발생한 두산을 편드는 듯한 내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KBO가 정한 코로나19 매뉴얼에 따르면 선수단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시 ‘대체선수로 중단없이 운영된다’는 게 원칙이다. 이에 KBO는 이례적으로 정정보도가 없을 경우 엄정대응하겠다는 반박 입장을 내놨다. ‘KBO 총재는 해당 긴급이사회에서 찬·반 투표권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논란이 일자 KBO 감독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이사회 녹취록을 받아 검토에 나섰다. 이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SBS 보도로 당시 녹취록이 공개됐다. KBO가 주장한 대로 정지택 총재가 표결에 나서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사회 의장인 정 총재는 회의 초반 “NC와 두산(의 경기)을 강행시키도록 하는 것에 대해 의장으로서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KBO도 녹취록이 공개된 뒤 내보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이 부분은 명확히 총재가 중립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몇몇 구단 대표들이 규정이 있는 만큼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규정대로 하지 않고 리그를 중단할 경우, 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사회 의장으로 방향을 정해놓고 이사회를 시작한 총재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엠스플뉴스의 정정보도는 없지만 엄정대응을 하겠다는 KBO의 강경한 태도는 바뀌었다. MK스포츠의 질의에 KBO 측은 “문체부 검토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녹취록 공개로 KBO의 엄정대응은 사실상 곤란해졌다. 총재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 만을 강조해서 대응에 나서긴 어려운 분위기다. 총재가 중립의무를 위반해 보이는 정황이 녹취록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야구계 내부에서도 “kt위즈가 통합 우승한 게 다행이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두산이 우승했을 경우, 공정성 시비가 다시 불붙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였다.
이미 야구팬들은 KBO를 신뢰하지 않는다. 공정하지 못하고, 원칙을 저버린 일 처리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KBO는 언론에 대한 엄정대응을 얘기할 게 아니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할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그게 KBO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