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한 파울루 벤투(53)와 그 일행이 고국 포르투갈로 돌아가자 국내 축구계는 ‘포스트 벤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회장·정몽규)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81대 감독인 차기 사령탑 선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렸다. 이사회는 협회 국가대표 전력 강화위원회가 12월 중으로 확정된 선임 기준에 따라 1차 후보군을 선별하도록 했다. 이어 내년 1월 중 최종후보군 선정과 후보자 면접을 통한 역량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것인지, 내국인 감독을 선임할지 전혀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재 분위기로서는 지난 4년간 해외파가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던 만큼 이제는 국내파를 선임, 2023년 아시안컵 축구에 이어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축구인은 “벤투가 초반 불거졌던 여러 가지 미숙함을 딛고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 것은 평가받을 만한 쾌거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2년 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2년여의 짧은 기간 선수들을 잘 이끌어 16강 진출에 성공했었다”며 “한국인 감독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은 박지성, 이청용, 박주영, 차두리 등이 맹활약, 그리스에 2대0 승, 나이지리아에 2대2 무승부, 마라도나가 지휘한 아르헨티나에 1대4로 져 1승 1무 1패 승점 4로 16강전에 올랐으나 우루과이에 1대2로 져 8강 진출이 좌절됐다.
한국 축구는 허정무 감독 이후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신태용 등이 지휘봉을 잡았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1무 2패)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1승 2패)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국내파로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학범(62)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 박항서(63) 현 베트남 대표팀 감독, 최용수(51) 프로축구 강원 FC 감독 등이다.
김 전 감독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손흥민 등을 앞세워 우승했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8강까지 진출한 바 있다. 당시 23세 이하였던 주전들이 대부분 국가대표팀에 포진, 선수 지휘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쌀딩크’ 박 감독은 ‘형님 리더십’으로 베트남축구를 동남아 최강으로 끌어 올렸고 1월 말 계약이 완료되면 귀국할 예정이다. 중국 프로팀 감독으로도 거론되는 박 감독은 40대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직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감독은 축구 국가대표로 69게임에 나가 27골을 넣은 골게터. 역대 득점 랭킹 10위로 골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표팀을 맡으면 자기 기술을 어떻게 현장과 연결하느냐가 과제.
2002년 월드컵 스타로 MBC 해설위원을 맡고있는 안정환(46)은 대표팀 감독 차출설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아직 지도자 자격증을 따지도 못했는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기용해 4강까지 올랐던 한국 축구는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독일 등의 외국인 감독을 기용했으나 벤투를 제외하면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어떤 방식으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1년 이후 네덜란드 4명, 포르투갈 2명, 독일 1명을 기용한 것으로 미루어 이번에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면 남미보다는 유럽에서 사령탑을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축구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74년간 초대 박정휘 감독부터 80대 벤투 감독까지 모두 51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활약했었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