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등 발굴한 임대기 육상연맹회장 중도 하차 [이종세 칼럼]

삼성그룹, 관례 무시…육상연맹회장 경질
종전 4~8년 하던 회장 임기 2년으로 줄여
육상계, 나쁜 선례 계속될까 우려 커

대한육상연맹 수장이 2년 만에 바뀌었다. 오는 8월 부다페스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내년 파리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경질된 것이다.

육상연맹은 지난주 회장 선발위원회(위원장 황규훈)를 열고 육현표(64)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을 제25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2021년 2월 제24대 회장을 맡아 남자 높이뛰기 세계랭킹 1위 우상혁(27·용인시청) 등을 발굴하는데 공헌한 임대기(67) 현 회장은 이례적으로 ‘2년짜리 회장’이 되고 말았다.

높이뛰기 우상혁(오른쪽)이 임대기 당시 회장으로부터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 금메달 특별 포상금 3000만 원을 받고 있다. 사진=대한육상연맹

육상연맹의 임기 2년 회장은 1980년 이후 43년 만에 처음이다. 육 신임회장도 다음 주 대한체육회의 인준을 받으면 공식 취임하는데 임기는 2025년 1월까지 2년이다.

물론 그동안의 관례로 미루어 임기는 연장될 수 있다. 문제는 1997년 1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그룹이 육상연맹을 맡은 이후 그룹 산하 사장 출신 임원이 4년 또는 8년씩 수행하던 육상연맹 회장직 임기를 갑자기 2년으로 줄였다는 데 있다.

신임회장이 업무 파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기에 교체되면 직무의 연속성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상연맹 회장 인사는 삼성그룹 고위층의 뜻을 헤아려 그룹 산하 전략기획실에서 결정하는데 회장 임기를 2년으로 하는 나쁜 선례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후임 회장에 육현표 선임…임기 2년은 문제

1945년 9월 출범한 대한육상연맹은 1970년대까지 정일형, 최순주, 백두진, 윤치영, 민관식, 김현옥 등 정계의 거물들이 회장직을 맡았었다. 1985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박정기(88) 한국전력 사장이 1996년까지 12년간 한국육상을 이끌면서 남자 마라톤의 황영조, 이봉주 등을 배출했다.

삼성과 육상연맹의 인연은 1996년 8월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건희 회장이 김운용 당시 대한체육회장의 권유에 따라 육상연맹을 맡아 이대원 삼성중공업 부회장을 육상연맹 회장으로 지명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삼성 출신 육상연맹 회장은 20대 이대원(82), 21대 신필렬(77), 22대 오동진(75), 23대 배호원(73) 씨 등으로 길게는 8년, 짧게는 4년씩 회장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재작년 2월 제24대 회장에 취임한 임대기 회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2년 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제25대 회장에 취임할 육현표 회장도 2025년 1월까지 임기가 2년으로 발표됐다. 육상연맹 회장 2년 임기는 축구 야구 등 대한체육회 가맹 62개 경기단체 회장 임기 4년과도 맞지 않는다.

육현표(오른쪽) 회장이 황규훈 선발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있다. 사진=대한육상연맹
“임대기, 우상혁을 세계랭킹 1위로 키웠는데...”

특히 이번에 물러나는 임대기 회장은 ‘스마일 점퍼’ 우상혁이 지난해 9월 21일 남자 높이뛰기 세계랭킹 1위에 오르고 세계육상연맹(WA) 2022년 최우수선수에 선정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그의 공적이 돋보였다.

우상혁은 2022시즌 랭킹포인트가 1405점으로, 2020 도쿄올림픽 공동 우승자인 장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1383점), 무타즈 에사 바심(카타르·1375점)을 각각 2, 3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한국육상 78년 역사상 한국선수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것은 우상혁이 처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황영조나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의 이봉주도 세계랭킹 1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오른 우상혁은 지난해 체코 실내대회에서 한국신기록(2m36)으로 우승한 데 이어 베오그라드 세계실내선수권대회 우승, 미국 유진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우상혁은 지난 12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실내선수권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서는 여자 투포환 정유선(26·안산시청)이 16m98로 우승, 이수정(30 · 서귀포시청)이 16m45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모처럼 한국육상이 상승세를 보였다.

양궁은 18년째 정의선 회장…윤 대통령도 관심

대한육상연맹 회장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관련, 육상계는 “인사를 주관하는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이 오는 8월 세계선수권대회, 9월 아시안게임, 내년 하계올림픽 등 빅 이벤트가 줄지어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적어도 4년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육상연맹 회장 인사를 그룹 산하 사장단 인사하듯 2년 만에 갈아치운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육상계는 또 “현대그룹이 맡은 양궁이 1984년 LA 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뒤 40년 가까이 세계 최강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삼성그룹이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양궁은 1983년 현대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이 20여 년 맡아오다 2005년부터 그의 아들 정의선 회장이 18년째 회장직을 수행하며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지난 14일 진천선수촌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여타 종목을 제쳐놓고 김우진 등 양궁 대표선수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한국양궁에 보내는 무한 신뢰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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