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시원섭섭하지 않아요.”
지난 시즌 6위의 부진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던 흥국생명이었지만, 지난 1월 2일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팀의 순항을 이끌던 권순찬 감독의 전격 경질 소식이었다. 흥국생명은 “팀의 방향성이 맞지 않다”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2위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이영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직을 맡았으나 한 경기만 치르고 팀을 떠났다. 흥국생명은 빠른 재정비를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수석코치로 있었던 김기중 선명여고 감독을 데려왔으나, 김기중 감독은 부담감을 이유로 감독직을 최종 고사했다.
결국 1월 8일 IBK기업은행전부터 지금까지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이는 김대경 코치였다. 김대경 코치는 1987년생으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현대캐피탈에 몸을 담았다. 그는 2016년 KGC인삼공사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IBK기업은행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시즌 시작 때만 하더라도 권순찬 감독, 이영수 수석코치에 이어 팀의 써드 코치였다. 그저 감독과 수석코치를 보좌하고, 선수들의 훈련에 도움을 주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모두가 떠난 이후 김대경 코치가 해야 될 일은, 그의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고, 경기 전 공때리는 건 물론이다. 여전히 어색한 경기 전·후 인터뷰, 경기 도중 작전타임, 비디오 판독 신청 등 낯선 경험을 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니,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1월 말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Z-스타 여자부 감독으로 활약했다. 3라운드 성적 기준, 남녀부 1, 2위 팀 감독이 M-스타와 Z-스타 감독직을 맡았다. 3라운드 2위였던 흥국생명이 Z-스타 감독직을 맡아야 했다. 김대경 코치는 부담감과 현재 위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사를 했지만, 그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았다. 김대경 코치는 다소 어색한 정장을 입고 올스타전에 참석해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렇지만 김대경 코치는 부담감 속에서도 선수들과 똘똘 뭉쳐 흥국생명 반등을 일궈냈다. 김대경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치른 10경기 동안, 흥국생명은 7승 3패라는 호성적을 챙겼다. 특히 15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3-0 완승을 챙기며 106일 만에 선두 탈환에 성공했다.
이전의 감독, 코치들이 썼던 전술을 고집하지 않았다. 만약 잘되지 않을 때는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포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일 GS칼텍스전에서도 1세트 김연경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등록명 옐레나)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2세트부터는 다른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꾀하며 승리를 가져왔다.
최근 흥국생명은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을 데려왔다. 아본단자 감독의 취업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면서 23일 도로공사전부터 잔여 시즌을 운영할 계획. 김대경 코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만났던 김대경 코치는 “감독님이 오셔서 좋다. 이제 나는 감독님이 부여하는 역할을 열심히 하면 된다. 시원섭섭한 마음은 없다”라고 말했다. 말을 이어간 김 코치는 “이번에 감독대행직을 하면서 감독님들이 ‘많이 힘들겠구나’라는 걸 느꼈다. 코치로 다시 돌아가서 감독님을 많이 도와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김대경 코치는 한 달 넘게 코트에서 공을 때리는 것부터 시작해 작전타임, 인터뷰 등을 소화했다. 구단의 비상식적인 운영 행보 속에서도 팀을 지켰다.
이제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감독대행직을 맡으면서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가 분명 아본단자 감독에게도 큰 힘이 될 터.
김대경 코치는 “감독님이 팀 훈련에 합류하게 되면 우리 팀과 선수들을 파악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벼랑 끝에 몰렸던 흥국생명에 힘을 준 김대경 코치, 세계적인 명장 밑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맞을 기회를 맞았다.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흥국생명은 오는 23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도로공사와 5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는 새 선장 아본단자 감독의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다.
[이정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