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야구인 발언, 뿌리 잃은 자의 슬픔이었다 [취재파일]

김현수의 ‘야구인 발언’은 뿌리를 잃은 자의 슬픔이었다.

15년간 국가대표로 헌신한 이가 떠나는 자리에서, 캡틴으로서 선수단을 대표해 가슴속에 담아왔던 이런 속내조차 털어놓을 수 없다면 과연 누가 다시 ‘무게’를 짊어지려 할까.

기자는 13일 중국전 직후 현장에서 바로 그 김현수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발언이 나온 상황을 바로 앞에서 호흡 하나까지 모두 목격한 당사자다. 그렇기에 그 발언의 본의가 왜곡되어 알려지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사진=천정환 기자

김현수는 13일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 캡틴으로서 ‘즐기는 선수단의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던 점과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해 수없이 자책하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김현수는 인터뷰 말미에 약 10초 정도 발언을 고심하다 이렇게 말했다.

“대표팀에 많이 출전하면서 역대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배들에게 항상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닌 분들이 많이 굉장히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다.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쉽다. 우리와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아쉬운 것 같다.”

현재 대중들에게 김현수의 “우리와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아쉬운 것 같다”는 발언은 자칫 부진한 성적으로 대회 기간 많은 비판을 받았던 대표팀을 옹호해 주지 않은 이들이 아쉽다는 ‘편가르기 식의 경솔한 발언’으로 읽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김현수를 비롯한 선수단이 대중들이나 야구 선배들의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억울해 하고 있다’고 읽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김현수의 본의나 선수단의 분위기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누구 하나 이 참사에 침통해 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고, 선수들 하나같이 비판에 대해 받아들이고 고개를 숙였고, 큰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변명이라도 꺼내어 개인이나 팀의 부진을 포장한 이들이 없었다.

실제로 김현수는 이 발언에 앞서서도 같은 인터뷰에서 선수단이 대회를 치른 각오, 부진한 성적에서의 분위기를 아주 힘겹게, 고심하며 전했다.

김현수는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음...우리 선수들이...정말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여기에 놀러왔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 짧은 말을 하면서 김현수는 수 차례 눈물을 참으려 애썼고,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모르겠다’는 말 직후 김현수는 “대표팀에 많이 나왔는데 성적이 안나오면 당연히 욕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먹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되니까 조금 마음이 많이 아프고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 대표팀의 부진에 많은 야구팬들의 마음이 가장 아팠을 터다. 그 참담한 마음을 수없이 목격했던 미디어의 종사자, 도쿄 참사의 현장에서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참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음을 생생히 느꼈다.

‘욕먹어 마땅하다’며 자책한 선수단 역시 자신들의 부진에 마음이 아팠던 이들이고 당사자다. 결국 벽과 격차를 느끼고, 마음을 쏟아서 한 일들에서 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패배감과 괴로움으로 고개를 숙이며 한국에서의 많은 반응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적어도 이번 대표팀의 문제점, 오랜 기간 존재했던 시스템이나 구조적인 문제의 맥락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선수들의 부진한 경기력과 결과를 비판하고 안타까워 하는 동시에 위로와 격려 그리고 희망도 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야구인’들은 모진 말과 과한 표현들로 그 당사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을 대표한 주장인 김현수가 대회 기간 내내 가슴에 담았던 이런 발언조차 할 수 없다면 앞으로 과연 누가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짊어질 수 있을까. 희생하고 증명하는 자리란 걸 누구나 알고 갈망하지만, 이토록 소모적인 필요 이상의 것들을 계속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부진에 대해 비판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김현수의 말과는 달리 욕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팬들이나 대중들이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나 실망한 지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들의 고액 연봉이나 팬들에게서 받고 있는 사랑에는 ‘비판을 견뎌야 할’ 당위성이나 책임이 있음도 맞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 이상의 비난, 도를 지나친 표현, 인신공격들이 용납될 수 있는 건 단지 일부 세상이나 집단에서 뿐이다.

김현수가 작심 발언을 통해 언급한 그들은 한국야구의 레전드인 동시에, 과거의 치적들도 충분히 있다. 야구계에 기여한 바가 분명이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이른바 황금세대의 활약으로 한국야구가 중흥기를 맞은 시기 수혜를 함께 입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후 한국야구가 정체되고 비판의 회초리를 맞는 시간 동안, 큰 나무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나 뿌리가 되는 대신에 한 발짝 떨어져서 과육만을 취했다. 겉으로만 더 화려하게 한국야구의 어른을 자처해온 이들이다.

대신 정작 쓰디 쓴 그 말과 겉만 화려한 표현,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현실에선 자신들의 이득에만 더 몰두했던 그 이중성을 아는 이들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비판이 일부 정당하고 옳은 말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통해 유의미한 변화가 이어지긴 힘들다는 사실 역시 많은 이가 안다.

대표팀이란 존재는 단지 선수단만 외롭게 떠 있는 섬처럼 홀로 되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시기만이라도 야구인들은 ‘원 팀’이 되어 선수단을 지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어햐 하지 않을까. 미디어와 대중들이 그들을 비판하고 때로는 그 수위가 과해졌을 때도 말이다.

대신 ‘개인’으로의 자신들의 이름만 부각된 이번 참사 과정에서의 그들의 비난은 개인 감정, 사적인 목적을 취하기 위한 발언, 스스로를 빛나게 해준 말에 그쳤을 뿐이다. 평소에 행동하고 기여하는 대신 위기 속에 집을 불태우기 위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는 언제나 위기와 자신의 기회 속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반대로 김현수는 지난 15년 간 한국야구의 영광의 순간과 오욕의 순간에 모두 국가대표를 지냈던 당사자다. 대표팀의 모든 역사와 맥락을 이렇게 긴 시간 경험한 이가 작심하고 전한 말이 과연 한순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현수가 이번 대표팀이나 스스로를 ‘뿌리 잃은 이’라고 느끼며 눈물을 흘린 감정을 그들의 밖에서 지켜보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현역 선수들이 어째서 스스로를 ‘진정한 선배’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을 이끌어줄 야구계의 큰 어른이나 리더가 없음을 그간 안타까워 했는지를 새삼 알게 된 기분이다.

[도쿄(일본)=김원익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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