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는 덕담하는 것이 상식인데 쓴소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다름이 아닌 한국유도 이야기다. 9월 24일부터 나흘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유도 경기에서 한국은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6개로 역대 최악의 성적에 머물렀다.
2016 리우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기록한 ‘노골드’에 이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유도는 남자유도만 처음 채택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8체급 중 6체급을 우승했고 이후 여자유도도 합류한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부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는 매회 2~7개의 금메달을 땄었다.
따라서 유도전문가들은 이번 대회에서도 혼성단체전을 포함한 15개의 금메달 가운데 한국이 2~4개의 금메달을 딸 것으로 전망했으나 달랑 1개에 그치고 말았다. <도표 참조> 한국유도가 올림픽, 아시안게임의 ‘효자종목’에서 ‘문제 종목’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나마 개인전 마지막 날 한국체대 출신인 여자 78㎏이상급의 김하윤(안산시청)이 역대 전적 2전 2패인 중국의 쉬스옌을 꺾고 우승해 ‘노골드’의 수모를 면했다. 김하윤은 지난 8월 헝가리 마스터스대회 준결승에서 쉬스옌에게 져 동메달에 머물렀는데 한 달여 만에 패배를 설욕했다.
반면 용인대 출신으로는 남자 60㎏급 이하림(한국마사회)과 남자 81㎏급 이준환(용인대)이 은메달을 땄고 대회 2연패를 노렸던 남자 66㎏급 안바울(남양주시청)은 동메달에 그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유도의 이번 대회 수모는 선수 선발부터 예견이 가능했다. 남녀 개인전 7체급에 나간 14명의 선수 가운데 85%인 12명이 용인대 출신으로 채워졌고 나머지 2명이 한국체대 출신이었다.
물론 공식 선발전을 거쳤기 때문에 14명 전원이 용인대 소속이거나 졸업 선수로 채워질 수도 있다. 문제는 선발전 심판들 대부분이 용인대 출신으로 짜여 있어 비(非) 용인대 출신 선수들이 판정 불이익으로 탈락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잇달고 있다.
용인대 출신 전임 심판인 모 씨는 노골적으로 모교 후배들을 위해 편파 판정을 일삼고 있다는 평판이다. 회장부터 이사진, 분과위원장, 남녀 대표팀 감독 등 대한유도회 임원진이 용인대 출신 위주로 구성돼 용인대가 아닌 한국체대 등 일반대 출신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대 출신인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대한유도회장직을 물러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면서 최근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대 유도팀은 “용인대 들러리를 설 이유가 없다”며 잇달아 팀 해체를 하고 있고 이에 따른 도미노(Domino) 현상이 중·고교 팀에까지 번지고 있다.
일반대 유도팀의 경우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조재기(1976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하형주(1984 LA올림픽 금메달)의 동아대, 김재엽(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의 계명대, 이경근(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의 영남대 등 지방대에 이어 수도권의 한양대, 경희대 등이 팀을 해체한 지 오래다.
용인대 출신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발전 등 각종 대회에서 독주를 거듭하면서 허탈한 상황의 일반대 유도팀이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인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맥을 이어가는 일반대 유도팀은 한국체대, 경기대 외에 일부 지방대에서 팀을 운영하고 있으나 수도권 대학과는 현격한 수준차를 보인다.
37년 전인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우승한 6체급 출신의 대학을 보면 용인대 2명(안병근 박경호) 동아대(하형주) 계명대(김재엽) 영남대(이경근) 경기대(조형수) 각 1명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도를 나타냈었다.
이에 대해 일부 유도지도자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용인대 출신 선수들이 대학 선배 심판들의 후한 판정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만,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출신 대학을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외국 심판들이 엄격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 같은 용인대 출신 선수를 위한 편파 판정이 시정되지 않는 한 한국유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국내 선발전 등에서 판정 불이익을 받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성적을 내는 일반대 출신 선수와 국내 선발전에선 잘 나가지만 국제대회에서 맥을 못 추어 ‘안방 장군’으로 불리는 일부 용인대 출신 선수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 같은 한국유도의 문제점은 자체 해결이 어려워 대한유도회의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점이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