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직접 만든 거라며 수줍게 박스를 건넸다. 조그마한 박스에는 ‘노 콘돔’, ‘극초‘대’박형’이라고 적혀있었고 ‘대’는 흐릿하게 잘 안 보였다. 어떠한 말도 안 했지만 배우 안재홍은 “오해하지 마세요. 비타민이에요”라고 해명했다. 궁금해서 박스를 열자, 오해를 충분히 할법한 비타민 네 알이 있었다.
배우 안재홍은 인기리에 방영됐던 넷플릭스 ‘마스크걸’에서 ‘오타쿠’ 주오남 역을 맡아 10kg을 증량하고 탈모 특수 분장을 소화했다. “아이시떼루!”를 외치며 오타쿠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줬다. 파격 연기 변신으로 시청자들을 비롯 배우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그는 ‘은퇴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은퇴를 생각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
그랬던 안재홍은 또 한 번 ‘은퇴설’에 휩싸였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에 출연한 그는 수위 높은 애정신은 물론, “너 나 사랑해서 섹스하려는 거 맞아?”라는 마라맛 대사를 거침없이 내뱉으며 파격적인 캐릭터를 또 한 번 소화했기 때문. 그 덕분에 두번째 은퇴설에 시달렸다.
총 6부작으로 제작된 ‘LTNS’(극본·연출 임대형·전고운)는 ‘롱 타임 노 섹스(Long Time No Sex)’의 약자로,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 우진과 사무엘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으며 일어나는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을 그린 드라마다. 극중 안재홍은 섹스리스 남편이자 불륜 커플을 추격하는 택시 기사 사무엘로 변신했다.
“라디오에 나갔는데, 청취자가 ‘또드’라는 말을 하더라. ‘또라이드라마’. 또드라는 말이 괜찮더라. 우리만의 길을 가는 드라마다. 뭔가 지금까지 봤던 드라마와 다른 무언가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 말이 좋더라. 저희 드라마는 광기가 느껴지는 드라마같다. 그리고 시청하는 분들이 ‘내 이야기인데?’ 하면서 다시 조금 (부부 사이에)열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의 감정이고. 이 부부가 범죄 행각을 벌이지 않나, 원제가 ‘부부 공갈단’이었다. 나로서 우리로서 시작해서 저들로 이야기하는 게 드라마의 무기인 것 같다. 물론 범죄 행각을 벌이는 부부가 있으면 안 되지만.”
‘LTNS’는 안재홍의 말처럼 장르가 확장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섹스리스 부부의 이야기였다가 범죄극으로 장르가 확 바뀐다. 근데 장르물이었다가 정서적 외도와 육체적 외도의 이야기가 흘러나와 시청자들에게 생각을 안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안재홍은 두 가지의 외도 중 어떤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시청자들의 수만큼 다양한 해석과 마음일 것 같다. 뭐가 우위에 있다고 결정된 게 아니어서. 드라마에서도 격렬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서로를 물고 끝까지 가버리는 이야기로 나오지 않나. 뭐가 나쁘다기 보다는 한 덩어리 같았다. 정서적인 측면 육체적인 사랑, 하나여야 더 완벽해지는 거고 그게 조화롭지 않나. 뚝 떨어놓고 이게 나쁘냐 저게 나쁘냐고 물어보는 자체가 드라마가 던지는 큰 화두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불륜 커플이 나오는데, 그런 이야기를 던지다가도 6회 마지막에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건 다른 의미인 것 같다.”
‘LTNS’에는 주변에 있을 법한 참 다양했던 불륜커플이 등장한다. 레퍼런스를 어떻게 찾았나 생각들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드라마 속 불륜 커플들이 정말 대표적인 불륜이라고 하더라. 저는 개인적으로 3회에 나오는 정진영 선배님이 연기했던 백호와 영애, 그리고 영애의 편지 나레이션이 너무 슬펐다. 그 장면이 인상 깊고 슬펐다. 모든 캐릭터가 입체성을 가지는 것 같다. 소개되는 커플들이 다 보통이 아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 이학주 님이 연기한 캐릭터도 명대사가 있지 않나. ‘사랑은 두 개까지야’라는 게 저희 작품에 불을 지핀 것 같다. 드라마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역할을 한 것 같다. 호텔 로비에서 눈물을 쏟는 장면은 이 작품이 보통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시작인 것 같다.”
요즘 한국 드라마에는 불륜을 빼놓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작품에 불륜 소재가 등장한다. ‘LTNS’ 또한 그렇고 ‘불륜’을 주로 다뤘다. 안재홍은 불륜이 이해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사무엘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다양한 비밀의 사람들을 보고 추적하면서 그런 마음은 가졌을 것 같다. 미행하고 협박하지만 저들보다 내가 나은 게 없을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불륜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물론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불륜을 지지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정서적 외도와 육체적 외도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엔딩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이 드라마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
“열린 결말이지만 배우 입장으로 저는 다시 잘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딸기 가지고 크리스마스 밤에 우진의 집에 찾아간 것은 사무엘만큼 우진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옆에 있어 주고 싶어서 예고없이 찾아갔다고 생각했다. 다시 잘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우진이는 즉흥적이지만 재지 않고, 거침없는 성격이다. 실제였다면 우진이 같은 여자에게 끌렸을까.
“솔직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굉장히 매력있고 멋진 상대일 것 같다. 주관도 분명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보통 남자들은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죠. 근데 멋진 캐릭터죠. 이면에 가진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강단있고 자기 주장 분명하지만 유약한 면을 한 순간 보여주지 않나. 그게 매력있고 멋진 캐릭터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부분은 사무엘도 마찬가지다.”
“사무엘도 정말 입체적이다. 빙산을 보면 물 위에 있는 것보다 물 밑에 더 많은 빙하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했다. 사무엘은 다리 밑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한량 중에서 한량이라고 생각했다. 승차거부도 하고. 일반적이지 않은데, 이 사람 뭐지? 싶었다.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있고 싶어서 택시 일을 하나 싶을 정도였다. 매력적이고 입체적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 영화 ‘소공녀’, 2020년 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이후 이솜과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서로가 서로를 격렬하게 치고받는 걸 찍으면서 이솜 배우와 전우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형제애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세 번째 호흡을 맞췄지만 ‘소공녀’에서는 애틋한 하나의 감정을 주로 소개하는 커플이었고, 제가 만든 단편영화에서는 짧은 먹먹함을 주고받았다. ‘LTNS’가 정말 이솜 배우를 알게 된 작품 같다. 설렘부터 격렬한 것까지 모든 희노애락을 연기하고 액팅을 해나가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이제야 이솜배우가 어떤 배우인 줄 알겠더라. 오히려 그래서 새로웠다. 긴장감도 생기기도 했다.”
첫 장면부터 파격적인 19금신이었다. 이후에도 아찔한 애정신이 등장했는데, 연기할 때 힘든 점은 없었을까.
“촬영하면서 느낀 것은 키스신, 애정신을 액션신이라고 많이 생각했다. 카메라와 호흡이 중요하고 롱테이크 장면이었기 때문에 카메라에 맞춰 회전하고. 안무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그런 장면을 찍으면서 액션 장면 같은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사실은 많이 테이크를 가져가지 못하겠더라. 계속 반복되면 진이 빠지는 장면이라서 몇 테이크 안 가서 오케이 됐던 장면들이다.”
유독 친근하고 찌질한 캐릭터를 하면 인기를 얻는 것 같다. 입체적인 연기를 펼친다는 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배우다. 매번 다르게 연기하는 것도 참 배우로서 능력이다.
“‘마스크걸’ 주오남과 ‘LTNS’ 사무엘은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고 다른 톤앤 매너로 임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았다. 이 작품에 맡는 화술로서 연기했기 때문에 완전하게 다르다. 사무엘로서 이 인물이 어떤 인물보다 넓은 폭을 가진 인물이구나라는 건 염두에 뒀다. 일상적인 집에서 늘어져 있는 모습과 범죄하는 다양한 모습을 하나의 캐릭터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는 임했고 인물의 입체성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택하기 보다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디테일을 담으려고 하는 편인 것 같다. 제가 작품이나 연기를 볼 때 의외의 사소한 한순간에 푹 빠지는 경험을 한다. 제가 관객이나 시청자로서. 슬쩍 하는 작은 제스처나 눈빛에 담긴다고 생각해서 저도 사소하거나 작은 디테일까지 챙겨가지려고 하는 편인 것 같다. 임박사무엘 같은 경우는 헤어밴드도 그렇고, 타이트하게 나오진 않지만 계속 골든리트리버 영상을 계속 본다. 유튜브를 볼 때 뭘 볼까. 집안일을 할 때 어떻게 청소할까. 청소에 진심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서 청소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다.”
안재홍은 ‘LTNS’가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거라고 말했다. 그가 연기했던 인물 중에 가장 입체적이었고 사소하면서도 장르적인 모습까지 다 보여줄 수 있는 양파껍질 같은 작품이라고. 그런 그는 차기작으로 19금 액션이 아닌 ‘엽문’ 같은 액션을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차기작은 ‘닭강정’이 될 것 같다. 거기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엽문’처럼 액션을 찍고 싶기도 하고, 안 해봤던 새로운 재미를 찾아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관객분들과 나누고 싶다. 더 넓어지고 싶고 다양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 같다.”
[김나영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