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성남고와 유신고가 우승 트로피를 두고 맞붙었다. 경기 전, ‘1라운드 후보’ 신재인과 오재원을 앞세운 유신고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졌지만, 결과는 달랐다. ‘언더독’ 성남고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10대 4로 유신고를 완파했다. 성남고엔 뚜렷한 상위 지명 유망주가 없다. 그런데도 안정된 전력과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세밀함으로 전국 무대 정상에 올랐다.
성남고에도 좋은 자원이 많다. 사이드암 오훈택을 비롯해 좌완 투수 조윤호, 유격수 이진혁 등이 시상대에 올라 주목받았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성남고 우승의 비결은 무엇보다 선수단 전체가 한 몸, 한뜻으로 일궈낸 팀워크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성남고 2루수 이률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엄청난 폭발력과 개성으로 시선을 끄는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탄탄하고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선보인다. A구단 관계자는 이률을 두고 “황금사자기 성남고의 언성 히어로”라며 “중요한 길목마다 빈틈없는 수비와 해결사 본능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스파이더’ 이률은 타고난 수비수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비 능력만큼은 최상위로 평가받았다. 넓은 수비 범위와 안정적인 캐치, 글러브에서 볼을 빼는 능력도 인상적이다. 올 시즌 역시 타격 슬럼프에 빠져 공격력에선 아쉬움을 남겼지만, 수비 완성도에선 합격점을 받은 그다.
박혁 성남고 감독도 “이률의 가장 큰 장점은 수비”라며 “현재는 팀 사정상 2루수로 활약중이지만 유격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스카우트들의 평가다. 프로에 지명된다면 다양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가 될 것이라 밝혔다.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선 이를 증명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1회 말 머리 위로 향하는 빠른 타구를 잽싸게 날아올라 캐치하는 장면은 아직도 결승전 백미로 손꼽힌다. 경기를 지켜본 B구단 관계자는 “현재 수비력은 지난해 야수 최대어였던 두산 베어스 박준순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이률 역시 수비력만큼은 자신감을 보였다. “공을 글러브에서 빠르게 빼는 동작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또 타자 유형이나 주력 등을 미리 파악한 뒤, 상황에 맞는 맞춤형 수비 스탠스를 가져간 게 대처 능력에 도움을 줬습니다.” 수비 천재 이률의 말이다. 그렇다고 현재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강한 자신감 뒤엔 철저한 준비 자세가 숨겨져 있다. 이률은 “다른 부분에선 성장했지만, 올해 들어 쉬운 타구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졌다”며 “가장 기본적인 수비 훈련부터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 시즌”이라고 밝혔다.
운동 능력 또한 강점. 특히 주루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팀 사정상 많은 도루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누상에선 상대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이률은 “누상에 있을 땐 우선 수비수들의 위치를 본다”며 “타구가 맞는 순간부터 미리 판단하고 출발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올 시즌은 이률에겐 뼈아픈 시즌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각광받았던 완성도 높은 타격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지독한 ‘고3병’이 발목을 잡았다.
타석에서는 여전히 기본기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박 감독은 “중학교 시절부터 힘의 전달력이 좋은 타격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아기 몸이라 근력이 성장하고 골격이 갖춰지면 매타석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양산할 수 있는 중장거리 타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장타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체중을 증량하고 있다. 고교 입학 당시 55kg이었던 몸무게를 지금은 80kg까지 찌우는 데 성공했다.
이률을 꾸준히 지켜본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LA다저스 김혜성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볼을 배트 중심에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다. 타격 슬럼프가 꽤나 길어지고 있지만, 최근 회복세를 보였다. 기본적인 자질이 뛰어나 공·수를 갖춘 완성형 타자로 성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끈질지게 따라다닌 타격 슬럼프. 이률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계 훈련 땐 컨디션이 정말 좋았어요. 근데 막상 시즌에 들어서니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타격폼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률은 동계 훈련 영상을 꾸준히 돌려 보며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엔 왼쪽 골반을 이용해 공을 친다는 느낌으로 타석에 들어서며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실제로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꾸준히 전국 무대에서 안타를 생산하며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11일 봉황대기 부산고전에선 4출루를 기록하며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이률은 “왜소한 체격 때문에 다들 파워가 약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보기보다 꽤 괜찮은 편”이라고 웃은 뒤 “연습 경기 땐 항상 타격감이 좋았는데 정식 경기에선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봉황대기에선 결과가 좋아 만족스럽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률의 수비력과 성장 가능성 높은 타격 메커니즘은 국외 구단의 마음을 훔쳤다. 특히 장래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MLB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의 한 스카우트는 “핸드 아이 콘택트 능력(눈과 손의 협응력)이 뛰어나다. 이률만큼 공을 잘 골라내는 19살은 흔치 않다. 마치 어린 시절 무키 베츠를 보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또 한 구단 스카우트는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지난해 휘문고 염승원(키움)과 비슷한 스타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스볼코리아 취재 결과, 이률은 최근 MLB 내셔널리그 한 구단으로부터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구단 관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눈여겨본 야수다. 우리는 향후 5툴 플레이어로 보고 꾸준히 관찰 중이다. 선수에게 오퍼할 가장 적절한 시점을 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KBO 신인 드래프트. 이률은 내야 다크호스로 평가받고 있다.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소감을 묻자 이률은 “3학년 시즌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리고 굳센 다짐을 밝힌 이률.
“제 좌우명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세상의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인데요. 지금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목표한 꿈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개인보단 팀과 동료들을 위해 뛰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더 큰 무대. 이률은 ‘제2의 무키 베츠’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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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