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접고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계속된 오디션 탈락, 이유 없는 불합격,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까지. 배우 유재명의 마음이 가장 낮아졌던 그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그의 인생을 멈춰 세웠다. 작품의 이름은 ‘응답하라 1988’이었다.
22일 유튜브 채널 ‘짠한형’에 공개된 영상에서 유재명은 배우 윤세아와 함께 출연해 배우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돌아봤다. 신동엽이 영화 ‘바람’을 언급하며 “신원호 감독이 그 작품을 보고 정우, 손호준, 유재명을 모두 ‘응팔’로 불러들였다”고 말하자, 유재명은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그때 오디션 현장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계속 잘 안 됐다”며 “어느 순간 ‘내가 여기서 왜 고생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찰나에 ‘응답하라 1988’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포기 직전, 마지막처럼 다가온 기회였다.
유재명은 극 중 류동룡(이동휘 분)의 아버지이자 학교의 학주인 류재명 역으로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짧지 않은 분량, 묵직한 존재감은 이후 그의 배우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그는 또 하나의 ‘기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내가 구조한 한쪽 눈이 좋지 않던 새끼 고양이 이야기였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올라갔는데 고양이가 제 옆에 와서 앉더라. 그 순간 눈물이 터졌다. ‘아, 이게 기운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무너질 것 같던 시기에 찾아온 작은 생명과 작품은, 결과적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어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 캐스팅 비화도 전했다. 원래는 박서준의 아버지로 짧게 등장할 예정이었지만, 유재명은 직접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장대희 회장 역을 제안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성공이었다.
다 접고 내려가려던 날, 인생은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멈춤은 끝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었다. 유재명에게 ‘응답하라 1988’은 작품 그 이상이었다. 배우로서 다시 걷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신호였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